[국가대표 여성기업인] (7) 국내 '한복 벤처' 1호…"선덕여왕 '미실' 옷도 우리 손 거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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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주 정훈닷컴 대표
영양사 출신…디자이너 꿈 못 버리고 창업, 6년만에 사극용 의상 70% 차지
영양사 출신…디자이너 꿈 못 버리고 창업, 6년만에 사극용 의상 70% 차지
"전통의 아름다움이 묻어나면서도 편한 한복을 만들어 전 세계에 한복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
한복디자인 및 전통문화마케팅 전문업체 정훈닷컴의 박영주 대표(49)는 자신을 '옷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머리 속에는 늘 한복의 유려한 선과 고유한 색깔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차 있어서다.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본사에서 만난 그는 연분홍 파랑 청록 등 수십가지 색깔의 한복원단에 빙 둘러싸여 있었다.
"고객에 대해 24시간 애프터서비스 체계를 적용하고 있어요. 일요일 새벽은 물론 추석 등 명절에도 차례상을 차리다 연락받고 옷 한 벌 들고 뛰어가기도 했죠."
2003년 설립된 정훈닷컴은 우리 전통의복의 고증 및 재현,제작,대여 등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한복벤처기업.영화나 드라마용 전통의상을 제작,공급하는 일이 주 수익원이지만,지방자치단체의 전통문화 행사 기획과 전통복식 컨설팅,혼례용 퓨전웨딩드레스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한복을 아이템으로 2007년 국내 최초로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
평범한 주부였던 박 대표는 1999년 동생이 편집장으로 있던 월간지 '한복'의 일을 도우면서 한복 사업과 인연을 맺게 됐다. 알음알음 방송국 드라마용 의상을 납품하다 '깔끔한' 일솜씨를 인정받아 회사 설립 6년 만에 국내 사극용 전통의상 시장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대표기업으로 성장시켰다.
MBC의 '태왕사신기''주몽',KBS의'대조영', SBS의 '연개소문''식객' 등이 정훈닷컴이 제작한 의상을 사용했다. 최근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MBC'선덕여왕'의 주요 인물인 '미실'의 의상도 최종적으로 박 대표의 손을 거쳐간 작품이다.
연매출은 10억원 안팎.그나마 대부분을 복식연구와 정보기술(IT)기반 디자인 솔루션 개발 등에 재투자하다 보니 남는 돈은 거의 없다. 이처럼 별 실속은 없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막연하게나마 직감했던 운명 같은 일이어서 즐겁다"며 미소를 지었다.
박 대표는 원래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영양사 출신.1981년 한양대를 졸업한 뒤 3년간 현대목재와 동양제과 등에서 직원들의 건강을 책임졌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동경했던 패션디자이너에 대한 꿈은 늘 가슴 한켠에 남아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대부분의 옷을 직접 만들어 입고 다녔어요. 당시에는 구하기 힘든 보그,바자 등 외국패션잡지를 구하기 위해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수없이 기웃거렸죠."
주부 시절 틈틈이 익힌 한국화는 전문가 수준.그동안 국전과 경기도전에 입선하기도 했다. 그러나 순수예술과는 달리 '고객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 2005년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한 사극의상을 맡았다가 사업자금의 대부분을 날렸던 아픔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일본 수군의 갑옷과 투구 등의 재질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미 만들어 둔 1억3000만원어치의 의상을 태워버려야 했어요. 방송국에 채권포기각서를 쓰고 나오면서 눈물을 참으려 이를 악물었죠."
하지만 납품약속은 지켜야 했다. 방송 일정이 이미 잡혀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신뢰를 지키기 위해 꾼 돈 6000만원을 들고 다음 날 혼자 일본으로 날아가 현지 업체를 찾았다. 사흘간 밤낮으로 수소문한 끝에 드라마제작에 꼭 맞는 갑옷과 투구 등 일본 수군 복장 700명분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박 대표는 "난생 처음 해본 무역인데다,갑옷과 투구가 무기류로 분류돼 업체를 찾는 것보다 오히려 통관에 더 애를 먹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의 목표는 한복디자인의 선진화다. 아직도 '자','치' 등 옛 단위를 쓰고 있는 60~70대 노장 디자이너들이 대부분인 업계의 현실을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을 활용해 발전시켜보고 싶은 것이 그의 욕심이다.
"한복의 아름다움에 대한 해외에서의 평가는 점점 더 각별해지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인 우리의 IT 기술로 글로벌 감각이 살아있는 한복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겠습니다. "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