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등 한국 반도체 회사들과 손잡고 인텔과의 한판 승부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

모바일 마이크로칩 설계 부문 세계 1위 업체인 영국 ARM의 튜더 브라운 사장(51)은 지난 8일 케임브리지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PC 부문 강자인 인텔과 모바일기기 부문 강자인 ARM이 넷북 마이크로칩 설계 주도권을 놓고 승부를 벌이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ARM은 생산공장 없이 마이크로칩을 설계해 삼성 LG 인텔 퀄컴 TI 등을 비롯한 전 세계 200여 반도체 회사에 공급한 뒤 판매액의 일정 부분을 받고 있다. 이 회사가 설계한 마이크로칩은 전 세계 모바일 기기의 90% 이상에 평균 2개씩,모든 전자기기의 25% 이상에 평균 1개씩 사용되고 있다. 직접 생산을 하지 않아 연간 매출은 6400억원(5억4600만달러 · 2008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이 회사의 설계도를 활용해 세계적으로 연간 40억개의 'ARM 칩'이 생산되고 있어 영향력은 막강하다. 마이크로칩 생산량에서 인텔에 이어 세계 2위다.

브라운 사장은 인텔과 싸움을 벌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넷북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텔은 그동안 독점하다시피 했던 PC 마이크로칩 시장의 성장성이 약화되자 넷북 등 모바일 기기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ARM은 2013년께 넷북 시장이 현재의 10배 수준인 연간 1억7000만대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넷북 한 대에는 평균 5~6개의 마이크로칩이 들어간다.

그는 "특히 PC와 모바일기기 성격이 혼합된 넷북의 마이크로칩을 누가 공급하느냐에 따라 IT 시장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인텔 ·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어지는 PC 소프트웨어 독점체제가 흔들리느냐 여부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브라운 사장은 "과거에는 마이크로소프트 · 구글 · 어도비 등 소프트웨어 제작회사들이 인텔 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짰지만 요즘에는 구글과 어도비가 ARM 제품을 지원하는 플랫폼을 내놓기 시작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ARM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 등 반도체 제작사들의 생산품이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삼성 LG 퀄컴 TI 등과 연합해 인텔에 맞설 것이며,생산제품 수에서 인텔을 제치고 1등이 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고 낙관했다. ARM은 마이크로칩 설계도만 공급하는 데서 한발짝 나가 'ARM 넷북' 생산에도 나설 예정이다. "이미 중국 하드웨어 생산업체와 협력해 시제품을 선보였으며,내년 중에는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IT 산업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브라운 사장은 "삼성과 LG는 훌륭한 마케팅 · 광고 전략을 가지고 프리미엄 제품으로 지위를 굳히고 있다"며 "원화 가치가 엔화에 비해 약한 지금 같은 시기는 시장을 넓힐 좋은 기회"라고 평가했다. 1983년 애플과 아콘의 합작사로 시작한 ARM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 마이크로칩 설계 부문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1994년부터 삼성 · LG 등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브라운 사장은 아콘 출신 ARM 초기 설립 멤버 중 한 명이며 작년 사장에 올랐다.

케임브리지(영국)=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