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 · 중 · 일 정상회의가 열렸다. 3개국 정상은 회의후 '한 · 중 · 일 3국 협력 10주년 기념 공동성명'과 '지속가능 개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한 · 중 · 일 정상회의는 1999년부터 '아세안(ASEAN)+3'정상회의 참석기간에 3개국 정상이 회의를 개최하면서 시작돼 올해로 만 10년이 됐다.

3개국은 동남 및 동북 아시아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전체 국내총생산의 약 70%를 생산하고 있으며 다른 어떤 동아시아 국가보다 국제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작년부터 3개국 정상들은 아세안 회의를 빌리는 모양새를 바꿔 중요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서 순차적으로 돌아가면서 모이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공동성명에 따르면 3개국 정상은 장기적 목표로서 '동아시아공동체'형성에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지금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개최된 지역협력체는 제도화된 지역협력기구(institution)라기보다는 대화과정(dialogue process)에 불과하다. 이번에 제안된 동아시아공동체가 의미있는 지역협력체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극복돼야 한다.

우선 공동체의 제도화를 위해서는 한 국가 혹은 복수의 국가가 주도권(leadership)을 발휘해야 한다. 주도권은 공동체를 발족시키는 단계에서 중요하다. 발족한 후에는 조직체를 유지하고,협약을 준수하지 않는 회원국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국력과 그러한 비용을 지불할 의사를 보유한 국가가 필요하다. 동아시아 지역의 현실 상황은 국력이 급격히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일본의 우려가 있으며,일본이 주도하는 공동체에 대해서는 중국과 한국의 우려가 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공동체 형성을 위한 주도권을 행사할 국가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다.

둘째,공동체 비전에 관한 합의가 필요하다. 동아시아공동체가 지향할 목표가 경제공동체 형성인지,통화기구 형성인지,자유무역협정인지 혹은 안전보장 협력체의 형성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특히 안전보장 협력체의 경우 위협을 발생시키는 주체,안보를 위한 협력 방식,집단적 안보행위에 관한 구상 등이 합의돼야 한다.

셋째,동아시아를 구성하는 지역범위에 관한 합의가 필요하다. 열린 지역주의(open regionalism)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국가에까지 열어야 하는가 문제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폐쇄적 협력체는 양자간 자유무역협정,ASEAN,동아시아경제회의(EAEC) 등이며,보다 개방적인 것은 아태경제협력체(APEC)이다. 앞으로 논의될 동아시아 공동체의 참가국에 관해서도 개방적 참가를 주장하는 견해와 보다 폐쇄적 참가를 주장하는 견해가 함께 있다.

넷째,미국의 건설적 개입이 필요하다. 미국의 개입이 없는 동아시아 안보문제 논의는 현실적으로 거의 의미가 없다. 북한의 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미국 역할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통일을 포함해서 북한 관련 안보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안보협력 관계 유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역내 다자안보 협력체에 미국의 개입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이 같은 과제가 현실적으로 해결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이 조정자 역할을 지향한다면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한국 국익에 긍정적이다. 한 · 중 · 일 간 공유하는 경제적 국익이 확대돼 상호의존이 심화되는 상황 하에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가치를 일본과 공유하고 있지만,군국주의에 관련된 과거사 인식에 관해서는 중국과 공유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 전체에서는 거대국가와 약소국가 간 중간국가(middle power)적 입장에 있으며 갈등하는 국익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호섭 중앙대 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