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獨 헤르타 뮐러,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만행을 고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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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태생… 獨 망명
단편집 '저지대'로 등단…폭압 정치 거침없는 폭로
단편집 '저지대'로 등단…폭압 정치 거침없는 폭로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타 뮐러는 시인이자 소설가,에세이스트로 전방위적 활동을 펼쳐온 루마니아 태생 독일 작가다.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깜짝 놀랐으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뮐러의 작품세계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정권에 맞서는 현실참여적 문학으로 요약된다. 세르비아-헝가리 국경에 있는 니츠키도르프에서 루마니아 독일계 소수민족으로 태어난 그의 삶 곳곳에는 독재정권의 폭압이 얼룩져 있다.
부농이었던 할아버지는 루마니아 공산당 정권에 농지를 몰수당했고,어머니는 루마니아 내 다른 독일인들과 함께 소련의 수용소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했다.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친위대로 끌려갔으며,트럭 운전사로 힘겹게 가정을 부양했다. 그야마로 뮐러는 '두려움의 학교를 다니듯 유년기를 거쳤다'는 표현대로 성장기 내내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젊은 시절 자연스럽게 반 차우셰스쿠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1973년 루마니아 티미쇼아라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해 독일문학과 루마니아문학을 전공한 그는 차우셰스쿠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던 젊은 독일인 작가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뮐러가 본격적으로 독재정권의 탄압에 봉착한 건 대학을 졸업하고부터다. 그는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정보원으로 일하라는 당국의 명령을 거부하다 직장을 잃게 된다.
문학의 길도 순탄치 않았다. 1982년에 발표한 첫 연작소설집 《저지대》는 검열을 거친 뒤에야 출간될 수 있었다. 이어 출간한 작품 《우울한 탱고》는 루마니아 독재 정권과 비밀경찰을 공공연하게 비판했다는 이유로 출판금지당했다. 일련의 탄압과 협박에 시달렸던 뮐러는 결국 차우셰스쿠 정권이 붕괴되기 2년 전인 1987년 독일로 망명한다. 그는 "내게 가장 끔찍했던 경험은 바로 루마니아에서 독재정권체제를 겪어야 했던 일"이라며 "루마니아에서 몇 백㎞ 떨어진 독일에서 살고 있는 지금도 과거에 겪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독일에 거주하며 뮐러가 발표한 작품들 대부분에는 독재정권 아래서 공포와 고통을 경험하며 생겨난 트라우마가 드러난다. '독재 치하를 고발하는 연대기'라는 평답게 독재정권의 실상을 파헤치고 그들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게 그의 특기다. 《여우는 그때 벌써 사냥꾼이었다》에서는 독재정권 아래에서 늘 두려워하는 여교사가 주인공이며,《악마는 거울에 앉아 있다》에는 본인이 당국의 명령을 거절한 후 겪은 수모와 고초가 반영돼 있다. 《청매실의 땅》은 차우셰스쿠 정권 치하에서 살아가는 루마니아 젊은이 5명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이 책을 출간한 후 "차우셰스쿠 독재 체제에서 살해당한 여러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의 만행을 고발하는 게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독재정권의 공포를 담아낸 작품을 연거푸 발표하며 그는 독일의 주요 문학상들을 수상하기도 했다.
독일문학계에서 뮐러의 위상은 소위 '다섯 번째 독일문학'(서독 외 동독,오스트리아,독일어권 스위스,루마니아 등 지역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대표하는 작가로 설명된다. 박정희 청주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망명 후 작품을 발표하긴 했지만 다른 작가들에 비해 늦게 인정받은 편"이라면서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꾸준히 고발문학 · 참여문학 작품을 출간하는 강한 신념의 작가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으며 문학성도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문학적 위상은 상당하며,특히 동구권 출신 작가들 중에서는 가장 높이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자로 거론되어 왔지만,뮐러의 작품은 국내에 널리 소개되지 못했다. 2001년 민음사에서 출판된 《책그림책》에 짧은 글 하나가 실린 게 전부다. 그 이유에 대해 독일어권 문학 출판을 중개하는 모모 에이전시의 한희진 실장은 "동유럽 독재정권이라는 주제가 국내 독자들에게 낯선 데다,문학적이고 밀도가 높은 작품이라 상업성이 높지 않은 게 그 이유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뮐러는 독일 작가로는 1999년 귄터 그라스에 이어 10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여성 작가로는 2007년 도리스 레싱 다음으로 12번째 수상자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뮐러의 작품세계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정권에 맞서는 현실참여적 문학으로 요약된다. 세르비아-헝가리 국경에 있는 니츠키도르프에서 루마니아 독일계 소수민족으로 태어난 그의 삶 곳곳에는 독재정권의 폭압이 얼룩져 있다.
부농이었던 할아버지는 루마니아 공산당 정권에 농지를 몰수당했고,어머니는 루마니아 내 다른 독일인들과 함께 소련의 수용소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했다.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친위대로 끌려갔으며,트럭 운전사로 힘겹게 가정을 부양했다. 그야마로 뮐러는 '두려움의 학교를 다니듯 유년기를 거쳤다'는 표현대로 성장기 내내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젊은 시절 자연스럽게 반 차우셰스쿠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1973년 루마니아 티미쇼아라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해 독일문학과 루마니아문학을 전공한 그는 차우셰스쿠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던 젊은 독일인 작가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뮐러가 본격적으로 독재정권의 탄압에 봉착한 건 대학을 졸업하고부터다. 그는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정보원으로 일하라는 당국의 명령을 거부하다 직장을 잃게 된다.
문학의 길도 순탄치 않았다. 1982년에 발표한 첫 연작소설집 《저지대》는 검열을 거친 뒤에야 출간될 수 있었다. 이어 출간한 작품 《우울한 탱고》는 루마니아 독재 정권과 비밀경찰을 공공연하게 비판했다는 이유로 출판금지당했다. 일련의 탄압과 협박에 시달렸던 뮐러는 결국 차우셰스쿠 정권이 붕괴되기 2년 전인 1987년 독일로 망명한다. 그는 "내게 가장 끔찍했던 경험은 바로 루마니아에서 독재정권체제를 겪어야 했던 일"이라며 "루마니아에서 몇 백㎞ 떨어진 독일에서 살고 있는 지금도 과거에 겪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독일에 거주하며 뮐러가 발표한 작품들 대부분에는 독재정권 아래서 공포와 고통을 경험하며 생겨난 트라우마가 드러난다. '독재 치하를 고발하는 연대기'라는 평답게 독재정권의 실상을 파헤치고 그들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게 그의 특기다. 《여우는 그때 벌써 사냥꾼이었다》에서는 독재정권 아래에서 늘 두려워하는 여교사가 주인공이며,《악마는 거울에 앉아 있다》에는 본인이 당국의 명령을 거절한 후 겪은 수모와 고초가 반영돼 있다. 《청매실의 땅》은 차우셰스쿠 정권 치하에서 살아가는 루마니아 젊은이 5명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이 책을 출간한 후 "차우셰스쿠 독재 체제에서 살해당한 여러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의 만행을 고발하는 게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독재정권의 공포를 담아낸 작품을 연거푸 발표하며 그는 독일의 주요 문학상들을 수상하기도 했다.
독일문학계에서 뮐러의 위상은 소위 '다섯 번째 독일문학'(서독 외 동독,오스트리아,독일어권 스위스,루마니아 등 지역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대표하는 작가로 설명된다. 박정희 청주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망명 후 작품을 발표하긴 했지만 다른 작가들에 비해 늦게 인정받은 편"이라면서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꾸준히 고발문학 · 참여문학 작품을 출간하는 강한 신념의 작가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으며 문학성도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문학적 위상은 상당하며,특히 동구권 출신 작가들 중에서는 가장 높이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자로 거론되어 왔지만,뮐러의 작품은 국내에 널리 소개되지 못했다. 2001년 민음사에서 출판된 《책그림책》에 짧은 글 하나가 실린 게 전부다. 그 이유에 대해 독일어권 문학 출판을 중개하는 모모 에이전시의 한희진 실장은 "동유럽 독재정권이라는 주제가 국내 독자들에게 낯선 데다,문학적이고 밀도가 높은 작품이라 상업성이 높지 않은 게 그 이유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뮐러는 독일 작가로는 1999년 귄터 그라스에 이어 10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여성 작가로는 2007년 도리스 레싱 다음으로 12번째 수상자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