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은퇴 후 전 재산을 자선사업에 쏟아부었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좌우명이었다고 한다. 그는 '많은 유산은 의타심과 나약함을 유발하고,비창조적인 삶을 살게 한다'는 이유에서 자손에게 부를 물려주는 것을 혐오했다. 카네기의 자선활동은 승자 독식의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였던 미국에서 기업들이 땀 흘려 돈을 벌되 기부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기부 자본주의'가 탄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카네기에서 시작한 '기부 자본주의'는 100여년이 지난 지금 세계 1,2위 부자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게이츠는 버핏의 권유로 세계 빈곤 문제를 분석한 세계은행의 세계개발보고서를 읽은 뒤 자선사업에 눈을 떠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 버핏은 3년 전 자신이 보유한 재산의 90%에 달하는 370억달러를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기로 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버핏은 세계 2위의 거부이면서도 소박한 생활로 유명하다. 40년 전 구입한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으며,10년이 다 된 중고차를 손수 몰고 다닌다고 한다. 12달러를 주고 이발을 하고,외식을 할 때는 20달러가 안 되는 스테이크를 즐긴다. 이런 버핏에게 왜 기부를 하냐고 물어봤더니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버핏과 같은 사회 지도층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 선진 자본주의를 건강하고 따뜻하게 유지시키는 힘이다.

우리나라에도 기부 천사들이 많다. 지난해 1억원에 이어 올해도 3000만원을 연세대에 익명으로 기부한 할머니가 그중 한 분이다. 3명의 자식을 키우면서 돈이 없어 대학 교육은커녕 밥도 제때 못 먹였지만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들도 공부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혀 우리를 감동케 했다. 2억원을 사과상자에 담아 담양군청에 익명으로 기부한 일명 '키다리 아저씨'도 있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천사들이다.

힘겹게 사는 서민들을 지원할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디트인 '미소(美少)금융'이 곧 출범한다. 그간 진행해오던 소액금융 지원사업의 재원 부족으로 걱정을 많이 했던 신용회복위원회 입장에서도 반가운 소식이다. 출발은 기업의 기부금으로 시작하겠지만,기부 천사들이 많이 참여해 희망을 잃은 사람들 곁에 국가가 있고 사회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

'버는 것은 기술,쓰는 것은 예술'이란 말이 있다. 익명의 할머니,키다리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훌륭한 예술가임이 틀림없다. 우리 사회에 더 많은 기부 예술가들이 나타나 신용회복위원회를 찾는 이웃이 없는 세상을 꿈꿔본다. 혼자 꾸는 꿈은 몽상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

홍성표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 ccrschairman@ccrs.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