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벌그룹들은 자녀의 결혼 등 혼사 문제에 대해선 '쉬쉬'하는 게 보통입니다.

설사 관련한 뉴스가 언론에 보도된다고 하더라도 시점은 일이 이뤄진 뒤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경우 일간지 보다는 여성 월간지에 '특종' 보도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처럼 재벌그룹의 혼사가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무조건적인 반재벌 정서'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내용이 공개돼 보았자 재벌그룹으로선 득될 게 별로 없다는 얘깁니다.

만일 이러한 소식이 보도돼 인터넷 포털에 뜨기라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상상이상의 '쓰레기'같은 댓글이 쏟아질 것이라는 건 누구나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재벌그룹의 혼사와 관련한 이같은 '관행'이 깨진 사례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LG그룹이 주인공인데요.

LG는 지난 9월 10일 "구본무 회장의 아들 광모씨(31)가 식품 첨가제 전문업체인 보락의 대표인 정기련씨의 장녀 효정씨(27)와 이달 말 화촉을 밝힌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LG측은 발표문을 통해 "결혼식은 구 회장 내외와 정기련 대표 내외를 비롯한 양가의 가까운 친인척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질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결혼식 일정과 장소 등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고요.

알려졌다시피 광모씨는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아들로, 2004년 아들이 없는 구 회장의 양자로 입적됐습니다.

광모씨는 그룹 지주사인 (주)LG의 지분 4.67%를 보유하고 있으며 구본무 회장의 뒤를 이어 LG그룹을 이끌 주인공으로 그룹안팎에서 주목받고 있기도 하고요.

이날 LG의 발표를 두고 재계나 언론계에서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결혼 발표를 안해도 그만이고, 결혼식을 올린 뒤 "했다"고 짧게 한마디만 해도 뭐랄 게 없었던 까닭입니다.

이 때문에 LG그룹이 먼저 광모씨의 결혼 소식을 공개한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한 언론이 취재를 해 어쩔 수 없이 공개를 했다는 등 여러가지 설이 떠돌았고요.

LG그룹에 정통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구본무 회장과 사돈이 될 정기련 대표가 이끄는 기업이 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는 공개기업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고려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인 보락은 LG그룹과 사돈을 맺게 됨으로써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기업의 이해측면에서 볼 때 혜택을 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혼인 사실을 밝히지 않을 경우 보락이라는 기업의 투자 정보에서 '형평성'의 문제가 따를 수 있었다는 겁니다.

혼인 사실이 결정되면서 (보락이 LG그룹과 혼사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든 없든) 투자자 모두에게 '공정한' 정보 접근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LG그룹내에서 제기됐다는 얘깁니다.

이 같은 결정은 LG그룹이 모토로 삼고 있는 '정도경영'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사실 LG그룹이 광모씨의 혼인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더라도 금융감독원의 '공정공시'관련 규정을 위반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이 규정은 재벌그룹 자녀의 혼인 문제에 대해선 '공시'할 의무사항으로 적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요.

업계 관계자는 "이같은 공시규정에 대해 앞으로 금감원에서도 심도있는 검토 작업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윤진식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