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노조는 북유럽 선진 노사관계 연수기간 중인 지난 1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조의 사회적 책무(USR)'를 신(新)노동운동의 테마로 채택했다. USR(union social responsibility)는 국내에서는 LG전자 노조가 처음 도입한 개념으로 무리한 파업이나 요구를 자제하는 대신 지역 봉사활동,하청업체에 대한 기술 지원,혁신적 생산활동 등에 적극 나서 기업과 지역사회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새로운 노동운동이다. LG전자 노조는 이를 위해 USR조직을 신설해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LG전자 노조가 선언한 '노조의 사회적 책무'는 그동안 조합원들의 이익과 정치적 목적 실현만을 위해 투쟁해온 국내 노동계에 새 화두로 등장할 전망이다. '노조 이기주의'로 불릴 정도로 노조의 이익에만 매몰돼온 노동운동에서 벗어나 '사회와 상생하는 노조'라는 새로운 좌표를 던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국내 노동운동의 판이 바뀌고 있다. 정치 · 이념 투쟁이 판치던 노동 현장에 상생의 실리주의 노선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노조의 실리 추구는 먼저 민주노총 탈퇴로 나타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에 이어 한국광해관리공단 노조도 21일 민주노총 탈퇴를 위한 조합원 찬반 투표를 실시한다. 박철량 노조 위원장은 2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 두 달간 진행한 지역 순회 간담회에서 투쟁 일변도의 운동 노선보다는 고용 안정과 복지가 더 중요한 가치라는 현장의 정서를 확인했다"며 "(찬반 투표에서) 조합원들이 동의한다면 새로운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 들어 민주노총을 탈퇴한 노조는 모두 20개.

단위 노조 내에서도 중도 · 실리 노선이 세를 얻어가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에서는 지난 15일 치른 지부장선거 1차 투표에서 중도 · 실리 노선의 두 후보가 얻은 득표율이 과반을 넘었다. 국내 14개 공항을 관리 ·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는 공기업 최초로 노사 합의로 임직원의 임금을 6.8%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임금 동결 또는 삭감을 통해 고용 안정을 이룬 민간 기업은 2950여개에 달한다.

권혁태 노동부 노사갈등대책과장은 "노동 현장에서 협력과 상생의 노동운동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며 "정치 · 이념 투쟁은 설 공간이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류시훈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