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교보생명 투자사업본부장(상무 · 44)은 보험사 자산 운용을 책임진 사람답게 현재의 투자 환경을 보수적으로 내다봤다. 시장이 정상화되면서 채권과 주식,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 기회가 올해 초에 비해 상당폭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코스피지수 1700선을 오르락거리는 증시에 대해 이 본부장은 "장이 강하지만 조정 시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본부장은 "우리 기업들이 환율 효과 등으로 상대적으로 좋은 실적을 내고 있고 FTSE 선진국 지수 편입을 앞둔 선취매 수요 등이 몰리면서 외국인 자금의 유입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 약세에 따른 달러 캐리 트레이드 수요도 전 세계 국가 중 상대적으로 기업 실적이 탄탄하고,유동성이 좋은 한국에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수급 상황은 괜찮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경기 회복 속도가 변수라고 지적했다. 이 본부장은 "기업들이 1,2분기 예상을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연출하며 장을 뒷받침했는데 3,4분기 실적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들의 기대 수준이 너무 높아졌고 경기 회복은 완만한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실적 기대를 채워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주식보다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mezzanine)투자를 권한다. 메자닌이란 '중간'이란 뜻의 이탈리아어로 위험 자산인 보통주 투자와 안전 자산인 선순위 채권의 중간 단계 금융상품을 일컫는다.

이 본부장은 "주식 관련 메자닌 투자를 하면 기본적으로 채권이기 때문에 증시의 하락 위험을 피할 수 있고 증시가 오를 경우 일정 정도의 수익을 향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 펀드에 투자한다면 국가별로는 중국이 유망하다"고 말했다. 내년에도 두 자릿수에 근접하는 성장률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원자재 원유 등 상품 투자에 대해서는 중립적이다. 가격이 급락했다가 일정 부분 회복했지만 향후 경기가 급속히 좋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 만큼 반등폭도 제한받을 것이라는 견해다.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인위적 규제가 없다면 당분간 수도권 중심으로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2~3년 뒤 정부가 약속한 주택 공급이 실제 이뤄질 때는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 본부장은 "정부가 최근 보금자리주택 등 공급을 늘리고 있지만 실제 공급이 이뤄지기까지는 최소 2~3년 정도 걸릴 것인 만큼 그 사이에는 오름세가 계속될 수 있다"며 "다만 실제 주택이 완공돼 물량이 늘면 점차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면서 가격이 잡힐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동산 값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는 데다 1인당 국민소득 등을 감안할 때 부동산 가격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게 이 본부장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채권 시장의 경우 단기 채권 투자 기회는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올초만 해도 회사채와 국고채 간 스프레드가 벌어지면서 투자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정상화됐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한국은행이 당분간 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올 들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실물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양적 확대 정책을 쉽게 거둬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장기 투자에 나설 것을 권했다. 자산의 20~30%를 주식에,20~30%는 일반 예금 등 유동성 있는 자산에 넣고 나머지는 채권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시장이 대부분 정상화되고 일부는 과열이 생기고 있어 단기 투자를 하기에는 좋지 않다"며 "5~10년을 바라보고 장기 포트폴리오를 짜면 연 6~7% 수준의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1998년부터 자산운용과 재무,경영기획 등을 맡아왔고 현재 52조원에 달하는 교보생명의 자산 운용을 총지휘하고 있다. 지난 6월 초 교보생명 정기 주주총회에서 40대로는 이례적으로 등기임원에 선임됐다. 교보생명의 자산운용 성과를 인정받았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금융위기 속에서 2916억원의 당기순이익(2008 회계연도 기준)을 내 업계 1위에 올랐다. 보험사뿐만 아니라 은행,증권 등 거의 모든 금융회사가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몇 조원까지 해외 투자 손실을 봤지만 5조원을 해외에 투자한 교보생명이 입은 손실은 500억원가량에 불과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도 꽤 많았지만 철저한 투자 대상 선별과 위험 관리로 2002년 이후 부실이 발생하지 않았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