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사태 1년을 맞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침체를 막기 위해 투입된 막대한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이 화두다. 출구전략이 현재로선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모처럼 경제가 호전되고 있는데 섣불리 긴축으로 돌아섰다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유동성 확대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맞는 지적이긴 하지만 인플레 우려 등 몇 가지 생각해야 할 점도 있다.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세계 각국은 금리를 대폭 인하하며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세계 각국이 금리를 인하하며 화폐 공급을 늘린 것은 옳았다. 왜냐하면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화폐 수요가 급증하게 되는데 그에 맞추어 화폐를 공급해야 금융시장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커다란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안정돼 화폐수요가 줄어 정상적인 수준으로 되돌아오는 시점에서는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전략을 세우고 시행해야 한다.

국내외 금융시장이 상당히 안정돼가는 한편,곳곳에서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와 곡물가격이 올 들어 50% 이상 뛰었다.

또한 최근 금값이 온스당 100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주식 및 부동산 가격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크게 올랐다. 한국만 해도 올 들어 코스피 지수가 40% 정도 올랐고,지난달 말 기준 전국 아파트 시세가 13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서울 강남지역의 일부 재건축 아파트는 최근 5개월 사이에 최고 70% 올랐다.

긴축을 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올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긴축 때문이 아니라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온 것이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에 금리를 제로까지 인하했고 파산에 직면한 좀비 기업들을 위한 보증기금을 마련하는 등 수많은 경기부양책에 쏟아 부은 돈이 100조엔이 넘는다. 그러한 정책은 일본 경제의 구조조정을 막았다.

1980년대 신용확장정책에 의해 촉발되었던 거품이 꺼졌을 때 일본은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었다. 소비자의 수요에 부합하지 않은 생산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 일본이 10년 넘게 경제 불황을 겪은 원인이다.

유동성 확대정책은 경제를 부양시키는 요술지팡이가 아니다. 특히 통화정책은 화폐수요에 따라 화폐를 공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둬야지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된 만큼 정부는 그동안 풀었던 유동성을 서서히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의 실행계획 마련을 신중하게 검토할 때다.

물론 출구전략을 실행하면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W형 경기변동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계속 유동성 확대정책을 끌고 간다면 나중에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따라서 출구전략 실행에 앞서 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각적인 방안도 꼼꼼하게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먼저 대외금융충격으로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국내 외환시장 안정화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확보하고 외국인의 직접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경제는 잘못된 투자가 교정되는 구조조정을 통해 민간경제가 활성화될 때 살아나기 때문에 규제완화,노동시장 유연화,그리고 감세와 같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출구전략에 따르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본격적인 경기회복과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다.

안재욱 < 경희대 대학원장·경제학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