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 내 최고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대표대행(67)이 '오고쇼(大御所,은퇴한 후에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정 · 재계 막후 실세)'로서 입지를 확실히 굳힐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의 귀신'이란 별명에 걸맞게 '미녀자객 공천' 등으로 총선을 주도했던 오자와는 과거 자신을 낙마하게 만든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뒤로 하고 화려한 부활을 꾀하고 있다.

교도통신과 산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민주당이 300석 이상을 확보할 경우 오자와 그룹은 100~12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의원 해산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시 승리하면 그의 계파는 더 커지게 된다. 이는 과거 1970년대 자민당의 최대 계파로 일본 정계를 좌지우지했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전성기 시절에 버금가는 규모다. 특히 민주당에선 비례대표 명부를 '오자와 리스트'라고도 부른다. 비례대표 후보로 상위 순위에 오른 야마자키 마야 간호협회 상무나 쓰쿠가케 데쓰오 전 국가공안위원장 등은 모두 오자와가 직접 영입한 사람들이다.

반면 차기 총리로 유력한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의 계파는 60여명 선에 그칠 것으로 보여 오자와 그룹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선 벌써부터 총선에서 승리하면 오자와의 영향력이 하토야마 대표를 압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본 정계의 풍운아로 통하는 오자와는 대다수 거물급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세습의원이지만 수대째 내려오는 식의 명문가 출신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 오자와 사에키는 일본 북부 이와테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신문배달과 인력거 운전수 등으로 일하며 대학을 마치고 변호사가 된 뒤 중의원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1969년 아버지의 지역구에서 27세의 나이로 중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오자와는 다나카 전 총리의 심복으로서 40대의 젊은 나이에 자민당 간사장을 맡는 등 승승장구했다. 오자와를 친아들처럼 아낀 다나카는 자신이 체득한 모든 정치 기술과 노하우를 물려주었다. 파벌 정치를 논하지 않고서는 통하지 않는 일본 정계에서 오자와는 최대 파벌인 다나카파의 '젊은 희망'으로 불렸다.

하지만 탄탄대로를 걸어온 오자와의 정치 행보는 1993년 당내 파벌 투쟁 패배로 자민당을 탈당한 뒤부터 크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는 군소 야당의 설립과 해산을 수차례 반복하며 '파괴자'란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는 1993년 신생당을 결성해 7월 중의원 선거에서 비자민 연립정권인 호소카와 모리히로 내각을 발족시켰다. 또 다음 해 12월에는 신진당을 결성해 간사장 겸 당수에 올랐지만 3년 뒤 파벌 대립으로 당이 쪼개졌다. 1998년 1월 다시 자유당을 만들어 자민당 오부치 게이조 내각과 자 · 자 연립을 결성했지만 공명당이 가세,자 · 자 · 공 연립이 되면서 주도권을 잃자 2000년 연립을 이탈했다.

오랜 정치 편력 끝에 2003년 민주당에 합류하고 3년 뒤 당 대표가 되면서 오자와의 정치 인생은 또 다른 전기를 맞았다. 그가 이끈 민주당이 2007년 참의원 선거 등 주요 선거에서 연승하면서 총리를 향한 오자와의 꿈은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나 올 3월 그의 비서가 니시마쓰건설이란 회사로부터 수천만엔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결국 스캔들이 터진 지 2개월 만인 지난 5월 당 대표에서 물러났다.

오자와는 특유의 정치적 감각과 뚝심으로 최고의 정객 중 하나로 꼽히지만 강압적 리더십과 소통 부족은 그의 최대 약점이다. 시종 딱딱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인터뷰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아 언론과 대중의 인기도 별로 높지 않은 편이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