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자동화기기(ATM) 보유 대수가 적은 금융회사에 수수료를 더 많이 부과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석함에 따라 은행들은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연계된 신용카드에 높은 수수료를 매길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몇 가지 단서 조항을 달아둔 데다 현실적인 제약 조건도 많아 증권사 CMA 카드에 적용하는 수수료를 높게 책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공정위는 26일 ATM 보유 대수에 따라 금융회사 간 수수료를 달리 적용하는 것이 적법한지를 묻는 은행연합회의 질의에 대해 "보유 대수에 따라 유지비용이 달라지는 만큼 합리적 수준의 차등을 두는 것은 공정거래법 저촉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은행들이 보유한 자동화기기는 4만8000여대에 달하는 반면 증권사들은 500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은행들은 이달 4일부터 지급결제 업무를 시작한 13개 증권사들이 수시 입 · 출금이 가능한 CMA 통장을 내세워 고객 유치에 적극 나서자 ATM 이용 수수료 차별화로 대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은행들은 증권사 CMA 연계 신용카드에 적용하는 수수료를 은행 신용카드 수수료(건당 450원)보다 높게 책정할 방침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동화기기 보유 대수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하는 것은 적법이라고 해석한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며 "금융회사 간 수수료 차등화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연합회도 조만간 소속 은행들을 대상으로 공동작업반을 만들어 구체적인 차등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증권사 CMA 신용카드에 부과하는 수수료를 높이기는 만만치 않다. 공정위가 이번 유권해석에서 "업권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수료를 달리 적용하는 것은 증권사에 대한 비합리적 차별로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또 은행들이 공동으로 증권사들에 대해서만 수수료를 달리 정할 경우 공동행위(담합)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공정위는 "ATM 보유 대수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화하더라도 증권업계가 이미 지급결제망 참가비를 냈다는 점과 중소형 금융회사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차등 적용해야 한다"며 "수수료 차등화 수준은 증권사 등 지급결제망을 이용하는 모든 금융회사가 참여해 상호 충분한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호저축은행 캐피털 신협 새마을금고 등 다른 제2금융권 회사들은 물론 ATM 보유 대수가 적은 지방은행 등 중소 은행들도 비싼 수수료를 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CMA 카드를 둘러싼 은행과 증권사 간 신경전이 전 금융권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여러 요소를 고려한 '합리적인 차별'이 가능하다는 말은 공정위가 아무 판단도 하지 않고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을 낸 것 아니냐"며 "은행들이 같은 서비스에 대해 저축은행 증권사 등 금융회사마다 모두 수수료를 다르게 매기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강동균/박신영/문혜정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