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 수좌(수행자)와 운동권 스님'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가 2006년 12월 바깥 출입을 삼간 채 1000일 기도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해했다. 과연 해낼 수 있겠느냐는 걱정부터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반응도 다양했다.

그러나 100일,200일이 지나고 사찰재정까지 공개하자 신도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예불에 동참하는 신도가 500명이나 되고,일요법회 땐 공간도 넉넉지 않은 법당에 1100여명이 북적댄다. 1000일 기도 동참모임도 생겼다. 오는 30일 1000일 기도를 마치는 서울 삼성동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59 · 사진)을 24일 절로 찾아갔다. 시원한 삼베옷 차림의 그는 "이판(수행승),사판(행정승)을 막론하고 출가자라면 수행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신도들의 관심과 동참 및 지원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중노릇 40년에 한 군데서 1년 이상 살아보긴 이번이 처음입니다. 특별히 힘든 건 없었어요. 갇혀 지내니까 감옥살이긴 하지만 그 감옥이 2만평(6만6000㎡)이나 되는 데다 신문,방송,인터넷도 다 들어오니까요. 무엇보다 신도들이 좋아하니까 안 할 수가 없었죠."

명진 스님은 주지로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10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수입이 많은 서울 강남의 '알짜배기' 사찰이라는 점 때문에 누적돼온 부정적 이미지를 한방에 날려 버리기 위해서였다. 특히 1000일 기도를 시작한 지 1년 만인 2007년 말 단행한 사찰재정 공개는 불교계 안팎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주지가 재량껏 쓸 수 있도록 관행화된 불전함까지 신도와 종무원들에게 공개하고 관리까지 맡겼다. 12억원이나 되는 불전 수입을 포기해 주지로서 '인심 쓸 수 있는' 여지를 싹 없애버린 것이다.

"재정을 공개하고 투명하게 살림을 하니까 수입이 크게 늘었어요. 취임 당시 74억원이던 연간 사찰 수입이 지금은 120억원으로 불어났습니다. 신도 수와 시주 규모가 다 늘어난 것 같아요. 또 사찰 운영에 신도들의 참여 폭을 확대한 것도 큰 도움이 된 듯 합니다. "

신도들 사이에선 명진 스님의 인기가 대단하다. 산중사찰의 생활과 선방의 일화에 유머까지 곁들인 법문은 그야말로 인기 '짱'이다. 일부러 법문 시간에 맞춰서 오는 신자들도 많다고 한다.

외부출입을 삼갔던 명진 스님은 1000일 기도 중에 딱 한 번 외출을 했다. 지난 5월29일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봉은사 신도인 권양숙 여사가 장례식 참석을 요청해서다.

명진 스님은 오는 30일 1000일 기도 회향법회를 연 뒤 다음 달 3일 강원도 인제 용화선원에서 두 달 동안 산철안거(동안거,하안거 사이의 안거)에 참여할 예정이다. "1000일 기도를 하면서 너무 많은 기대를 한몸에 받았고 그 결과 내 자신이 교만해졌을 수도 있어서 좀 더 집중적인 성찰의 기회를 가지려고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내년에는 신자들이 20~30명씩 한 달 단위로 공부하는 간화선 수행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명진 스님은 "1000일 기도는 선방에서 좌선하던 것을 형태만 바꿨을 뿐 끊임없이 나를 향해 물음을 던지는 것은 똑같다"며 "봉은사를 선종 수(首)사찰의 명성에 걸맞은 수행도량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