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소설가 "福壽草같은 희망안고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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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前 대통령 영전에 부쳐
선생님,갑작스런 비보를 듣고 순간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습니다. 저는 반드시 일어서실 것으로 믿었고,많은 분들이 또한 그처럼 믿고 있었기에 서거하셨다는 비보를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텔레비전 화면에 관계자들이 출연하여 선생님의 서거 소식을 전하는 순간 가슴 속을 울리는 슬픔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선생님과 개인적인 혹은 정치적인 인연이 있든 없든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함께 느끼고 있는 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어떤 신문사에서 선생님의 서거를 알려왔을 때,저의 머리 속에는 한 가지 단어가 스쳐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동초(忍冬草)였습니다. 선생님의 파란만장했었던 생애를 가름하는데 이처럼 적절한 말을 찾아내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겨울의 살갗을 에이는 삭풍,코끝을 날릴 것 같은 혹한,저절로 치가 떨리는 바람소리,온갖 풍상 속에서도 주눅들거나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기어코 꽃을 피우는 인동은 바로 선생님을 묘사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인동 외에도 복수초(福壽草)가 있습니다. 설련화 혹은 얼음새 꽃이라고 불리는 이 꽃은 4월 초순,아직도 채 녹지 않은 산기슭의 차가운 눈 속을 헤치고 꽃을 피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선생님의 생애는 인동이나 복수초의 꽃피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루신 업적은 우리나라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목숨조차 걸었던 것,그리고 남북의 평화 통일을 위하여 몸을 바쳤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기신 업적 가운데 한가지를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선생님께서 옥고를 치르고,망명생활을 하고,선거에 거듭 패배하고,사형선고를 받고,납치와 같은 거의 치명적인 시련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에 한없는 존경심을 느낍니다.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서 선생님처럼 많은 독서량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줄 압니다. 이 한가지 일만으로도 선생님께서 크나큰 사표를 이 세상에 남기시고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대통령에 당선되시어 청와대에 들어가셨을 때,저는 어떤 방송국의 주선으로 선생님을 인터뷰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감옥에 있을 때,저의 작품을 읽으셨다는 말로 인사를 건네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산골 고향을 들추며 이런 시골 출신이 대통령과 마주 앉아 인터뷰하게 되어 가슴이 설렌다고 말씀드렸을 때,"나는 저 먼 전라도 하의도 출신인데 뭘" 하시면서 위로해 주었던 인정 많은 대통령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파란 만장한 생애를 마치셨고,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너무나 많은 일들을 헌신적으로 하고 떠났습니다. 하늘나라 그 곳이 또 어떤 계절이 있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무거웠던 짐 내려놓으시고 사시사철 인동 꽃을 피우며 살아가시기를 빕니다. 하늘 나라로 안녕히 가십시오,선생님.
이러한 것들은 선생님과 개인적인 혹은 정치적인 인연이 있든 없든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함께 느끼고 있는 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어떤 신문사에서 선생님의 서거를 알려왔을 때,저의 머리 속에는 한 가지 단어가 스쳐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동초(忍冬草)였습니다. 선생님의 파란만장했었던 생애를 가름하는데 이처럼 적절한 말을 찾아내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겨울의 살갗을 에이는 삭풍,코끝을 날릴 것 같은 혹한,저절로 치가 떨리는 바람소리,온갖 풍상 속에서도 주눅들거나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기어코 꽃을 피우는 인동은 바로 선생님을 묘사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인동 외에도 복수초(福壽草)가 있습니다. 설련화 혹은 얼음새 꽃이라고 불리는 이 꽃은 4월 초순,아직도 채 녹지 않은 산기슭의 차가운 눈 속을 헤치고 꽃을 피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선생님의 생애는 인동이나 복수초의 꽃피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루신 업적은 우리나라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목숨조차 걸었던 것,그리고 남북의 평화 통일을 위하여 몸을 바쳤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기신 업적 가운데 한가지를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선생님께서 옥고를 치르고,망명생활을 하고,선거에 거듭 패배하고,사형선고를 받고,납치와 같은 거의 치명적인 시련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에 한없는 존경심을 느낍니다.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서 선생님처럼 많은 독서량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줄 압니다. 이 한가지 일만으로도 선생님께서 크나큰 사표를 이 세상에 남기시고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대통령에 당선되시어 청와대에 들어가셨을 때,저는 어떤 방송국의 주선으로 선생님을 인터뷰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감옥에 있을 때,저의 작품을 읽으셨다는 말로 인사를 건네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산골 고향을 들추며 이런 시골 출신이 대통령과 마주 앉아 인터뷰하게 되어 가슴이 설렌다고 말씀드렸을 때,"나는 저 먼 전라도 하의도 출신인데 뭘" 하시면서 위로해 주었던 인정 많은 대통령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파란 만장한 생애를 마치셨고,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너무나 많은 일들을 헌신적으로 하고 떠났습니다. 하늘나라 그 곳이 또 어떤 계절이 있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무거웠던 짐 내려놓으시고 사시사철 인동 꽃을 피우며 살아가시기를 빕니다. 하늘 나라로 안녕히 가십시오,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