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15일 광복절 우리 경제의 '저탄소 녹색성장' 화두를 제시한 이래 1년 동안 모든 길은 녹색으로 이어졌다. 정부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경영전략의 최우선적인 가치는 녹색이고,이젠 녹색 아닌 것이 없는 '묻지마 녹색'의 시대다.

미래의 경제 산업 패러다임이 녹색인 점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다. 기후변화라는 지구적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고,자꾸 오를 수 밖에 없는 석유 값으로 인한 에너지위기 극복의 해법이자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 전략이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녹색 말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녹색경제 성립의 전제가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를 탈피한 에너지 생산 · 소비구조로의 개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해지는 것은 녹색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그 미래가 언제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기가 얼마나 남았고,그동안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 하는 문제다.

유럽재생에너지위원회(EREC)가 지난 해 신 · 재생에너지의 전체 에너지소비 기여율이 오는 2040년께 최대 50%에 이를 것이라는 희망적 전망을 내놓으면서,인류가 화석연료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내다본 시기는 2090년께다. 금세기 말까지는 화석연료가 달리 대체수단을 찾기 어려운 주력 에너지원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고민은 그래서 시작된다. 우선 녹색의 미래는 너무 멀리 있다. 벌써 녹색열풍에 휩싸여 있지만 여전히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소비체계를 벗어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녹색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의 틀을 어떻게 구축할 것이며,화석연료의 개념은 또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석유소비 세계 7위,석유수입 세계 4위의 국가로 한해 들여오는 양이 7억5000만배럴에 이른다. 그런데도 에너지효율성은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 겨우 절반이나 3분의 1수준에 그치고 있다. 같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면서 우리가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겉으로만 보면 전형적인 에너지 낭비국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따져봐야 할게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소비량의 60% 가까이는 산업부문에서 쓰인다. 주력산업 가운데 IT(정보기술)분야를 제외하고는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정유 등은 모두 에너지 다소비업종이다. 다시 말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에너지 과소비가 불가피한 경제구조이고,그러한 산업체제를 기반으로 고도성장을 통해 오늘날 세계 13위 경제대국의 성취를 이뤄낸 것이다.

이게 녹색의 딜레마이다. 금세기말까지는 화석연료가 주력 에너지일 수 밖에 없고,앞으로도 당분간 화석연료에 의존한 에너지시스템과 경제 · 산업구조가 가장 비용이 적게 들것이다. 더구나 화석연료 중심 경제구조 개혁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에너지 집중 투입형,수출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단기간내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녹색을 내세우기 전 이 문제부터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일인 것이다. 화석연료 중심의 경제구조를 어떻게 합리화 · 고도화 시키느냐 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이고 에너지효율을 혁신함으로써 석유소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먼저 논의가 모아져야 한다. 지난 30여년에 걸친 에너지절약 혁명을 통해 산업기반 훼손없이 2000년대 들어 석유소비량을 감소시키는데 성공한 일본을 배울 필요가 있다.

자칫 녹색드라이브가 맹신(盲信)에 빠져 이런 구조적 문제와 걷돌면서 너무 빨리 멀리 나가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이유다. 녹색 한쪽으로만 쏠리다 보면 성장의 잠재력마저 잃고 녹색도 놓쳐버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