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7박8일간의 북한 체류를 마치고 17일 귀환했다. 10일 오후 1시50분께 경기도 파주의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거쳐 평양 방문길에 오를 때만 해도 방북 일정을 '2박3일'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미뤄지면서 방북 기간을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장,귀환 전날인 16일에야 오찬 회동이 이뤄졌다.

현 회장은 도라산 출입사무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원래 김 위원장의 스케줄이 다 짜여 있어 사실 주말에 오라고 한 것을 우리가 월요일날 일찍 간 것"이라며 "그래서 오래 기다리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주말로 잡혔다는 사실을 알면서 주초에 북한 방문길에 오른 이유는 뭘까.

현 회장의 김 위원장 면담이 15일까지 불발하면서 체류가 길어지자 북한이 애태우기 작전에 돌입했다는 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들은 현 회장이 귀경하기 전 체류 연장에 대해 "당초 하루나 이틀 정도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갔다"며 심각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말 면담이 사전에 예정돼 있었다'는 현 회장의 말대로라면 김 위원장과의 회동에 앞서 금강산 관광 재개 등과 관련해 북한 실무자들과 사전 조율이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실세로 부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장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대북 교섭창구를 재구축하기 위한 작업도 염두에 둔 방문이 아니었겠느냐는 분석이다.

현 회장은 김 위원장을 만나기 전인 13일 김 부장과 만찬을 가졌고 여러 공연도 관람하며 북측 인사들과 교감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과의 면담은 16일 오찬을 겸해 평안북도와 평안남도 경계에 있는 묘향산에서 낮 12시부터 4시간 동안 이뤄졌다. 면담 사실이 전해진 이날 회동을 마친 뒤 현 회장이 바로 귀경하지 않은 것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면담이 이뤄진 장소가 평양이 아닌 묘향산으로 평양까지 승용차로 2시간가량 소요되는 곳이라는 점,오찬 시간이 4시간으로 비교적 길었다는 점을 종합해 보면 늦은 시간에 귀경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사로 가지 않고 자택으로 향해 휴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원래 회사에서 진행할 예정이던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간단하게 질문만 받은 것으로 비춰볼 때 다른 일정 없이 자택에서 휴식을 취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