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해 여기자 2명을 무사 귀국시킨 이후 미국과 북한 간 주고받는 발언들에 갈수록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북 · 미 대화로 가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가 정례 브리핑을 한 지난 14일이었다.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모두 이행해 미국의 제재를 받지 않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크롤리 차관보는 "기술적으로 복잡한 과정일 수 있지만 반드시 긴 과정일 필요는 없다"면서 "의무를 준수하고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북한의 정치적 약속이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정치적 약속'이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다시 이행하겠다는 약속만 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구체적 이행조치가 이뤄지기 전이라도 체제보장,관계정상화,경제 · 에너지 지원 등 북한이 요구할 만한 세 가지 조건을 미국이 들어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미국의 태도는 기존 발언들과 비교해보면 분명 미세조정된 것이다. 지난달 18일 방한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세 가지 '포괄적 패키지'를 제시하면서 "북한이 중대하고 되돌릴 수 없는 조치를 취한다면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은 북한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포괄적 패키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 행동이 전제돼야 한다고 분명히 못을 박은 것이다.

미국의 입장 변화에 입을 맞춘 듯 북한의 태도 역시 상당히 완화되고 있다. 북한 김영일 외무성 부상은 14일 제2차 북한 · 베트남 차관급 정례 정책교류협의회 참석차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항상 협상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