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는 "민족의 운명은 외교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독일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중부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독일은 늘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분단과 함께 전쟁위협을 겪고 있다. 그리고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교역국가로서 세계무대에서 무한경쟁을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6자회담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늘 국민적 관심사이다.

세계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개방된 국가는 풍요롭고 발전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17세기의 네덜란드는 열린 사회였다. 가톨릭, 개신교,유대교 등 모든 신앙의 사람들을 받아들였고,신앙과 신분이 삶의 장애물로 작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적 역동성이 네덜란드를 무역대국으로 만들었다. 반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북한은 가난한 독재국가이다.

개방은 위험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개방을 하려면 경쟁에 대한 도전의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조선말 외세에 의한 강제개방으로 인한 망국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당파로 인한 내부적 위기와 개방으로 인한 외부적 위기가 중첩되면서 조선은 전쟁 한번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타국의 식민지가 됐다.

최근 경제위기를 맞아 우리 국민들은 현상타파적인 심리를 보여주고 있다. FTA의 체결이 교역과 외국인 투자 증대를 가져와서 위기 극복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경제위기가 시장개방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 · 중 · 일 3국은 서로 다른 FTA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은 대동아경제권이라는 구상 아래 동남아 등 개도국을 주요 협상국으로 삼고 있다. 일본 상품의 글로벌 생산라인이 구축돼 있는 국가와 FTA를 체결함으로써 그들의 세계 공장 내에서 원 · 부자재 등이 무관세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중화경제권이라는 개념 하에 인접국가를 FTA 주요대상국으로 삼고 있다. 중국의 개혁 개방에 유리한 우호적인 주변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거대시장 확보가 FTA의 주목적이다. 이를 위해 칠레,ASEAN,미국 등과 협정을 체결했고,EU와는 협상종료 후 서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FTA 체결에 따른 소국과 대국의 손익계산법에 의하면 소국의 경제적 이득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대국의 경우 관세율이 조금만 내려가도 열리는 시장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마치 강물이 빠지면서 거대한 땅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국내총생산 규모가 16조달러에 달하는 EU시장에서 관세장벽이 사라지면 한국은 EU보다 16배가량의 상대적 이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한 · EU FTA는 우리에게 전략적 이득도 제공한다. 한국과 유럽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교역이 빈번해지면 경제 이외의 분야에서도 긴밀한 관계가 형성된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기능주의적 파급효과가 지역통합도 가져왔다. 유럽연합은 경제협력에서 출발해 정치협력으로 발전한 것이다. 똑같은 논리로 EU와 한국이 하나의 자유무역지대가 되면 이익과 가치가 수렴하고 국제사회에서 동반자 관계가 강화될 것이다.

FTA는 협상 종료 이후가 더 중요하다. 시장이 개방되면 울고 웃는 산업분야가 생겨난다. 국내 산업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개방의 이익을 국가적 관점에서 재분배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경제개입이다.

시장개방으로 인해 생겨난 승자와 패자를 모두 웃게 만드는 통합적 산업정책에 성공할 때, 우리는 한 · EU FTA를 계기로 동북아 경제 삼국지를 새로 쓰게 될 것이다.

고상두<연세대 교수ㆍ지역학/연세-SERI EU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