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골드싱글이 사는 법‥"반쪽 찾고는 싶은데"…일ㆍ취미와 동거중이라 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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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숙제가 아니야 "동호회ㆍ대학원 등 자기삶 충실…'소울 메이트'에 집착하기도"
가끔 서글퍼질땐 "술친구 없고 저축은 원하고… '팍팍한 인생'들도 많아요"
가끔 서글퍼질땐 "술친구 없고 저축은 원하고… '팍팍한 인생'들도 많아요"
"또 딱지를 놨어? 그만하면 참 괜찮은 사람인데…."
올해 서른 일곱살인 김 과장은 주말마다 소개팅을 나간다. 안정적인 직업,나이트에서도 꿀리지 않는 외모,술버릇도 나쁘지 않고 사교성도 좋은 편이지만 여자친구는 없다. 김 과장은 "언제 국수 먹여줄 거냐"는 동료들의 성화가 지겹기만 하다. 혼자 사는 데 익숙해져서 결혼하면 귀찮을 것 같다. 치솟는 집값에 사교육비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끔찍하다. 맞선을 보러 나가서 상대방과 함께 결혼하지 않아야 할 이유에 대해 공감하며 수다만 떨고 돌아오는 날이 대부분이다.
'싱글' 김 과장,이 대리들이 늘어간다. 눈이 높아서,일이 바빠서,취미생활에 빠져 있어서 등등 이유는 갖가지다. 30대 중반이 넘어 경제력까지 갖추면 화려한 삶을 즐기는 '골드미스 · 골드미스터(골드싱글)'로 불리게 된다. 주변에서는 부러워하지만 나름대로의 고민을 안고 사는 싱글 김 과장,이 대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초식남 · 건어물녀? 내 삶에 충실할 뿐
연애에 관심 없는 골드싱글을 '초식남 · 건어물녀'라고들 한다. 초식남이란 남성다움(육식적)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으면서 연애에는 소극적인 남성을 말한다. 건어물녀는 일이 끝나면 집에와 맥주와 오징어 등 건어물을 즐겨 먹는 여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초식남 · 건어물녀 유전자가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이성 반려자를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하거나 더 재미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대기업 IR팀에 근무하는 이택경 차장(40)은 180㎝가 넘는 훤칠한 키에 30대 초 ·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말쑥한 외모를 자랑한다. 회사 입사 때부터 '1등 신랑감'으로 꼽혔지만 그는 아직 순수 솔로다. 원인은 동호회 활동.그는 와인 동호회,식도락 동호회,자동차 튜닝 동호회,오디오 동호회 총 4개 동호회의 열성회원이다. 2주마다 20여명씩 모이는 와인동호회에선 3년째 회장도 맡고 있다. 간혹 여성회원들과 연애를 하기도 했지만 동호회 활동 자체가 바빠 연애엔 시간을 별로 못 냈다. "평생 솔로로 살 생각은 없지만,그렇다고 당장 결혼할 생각도 없다"는 게 그의 얘기다.
럭셔리한 취미생활은 골드싱글의 특권이다. 자동차 회사의 과장급 엔지니어로 일하는 이모씨(33)는 겨울마다 친구들과 '뉴스쿨스키'를 타러 다닌다. 묘기점프를 하거나 뒤로 슬로프를 내려가는 등 스피드 이외의 요소를 즐기는 스키다. 외제차 동호회에 가입해 경기 양평 용문산길을 따라 묘기를 즐기거나 서로의 차를 바꿔 몰아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대기업 계열사의 박모 차장(38)은 연간 4000만원가량을 세계 곳곳에서 스노보드를 타러 다니는 데 쓴다. 지인들이 "넌 어떻게 된 게 주말마다 '해외로밍 중'이란 메시지가 나오느냐"고 투덜거릴 정도다.
기혼자들이 가정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를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다 보니 여러 부분의 능력이 높아진 것도 골드싱글의 특징이다. 한 외국계 제약회사의 김모 차장(36)은 시인 · 화가 · 사진작가 · 소설가 · 요리사이자 보컬그룹 리드싱어까지 겸해 주변의 부러움을 산다.
◆눈 높은 게 뭐 어때서?
대부분의 골드싱글은 연애에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결혼을 결심하지 못한 이가 대다수다. 눈이 높다는 비판도 받지만 이들은 왜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숙제하듯 억지로 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이윤미 차장(38)은 흔히 말하는 능력 있고 집안 좋은 골드미스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주 선을 봤다. 그러나 선에서 만난 남자들은 늘 그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주변에서 눈이 높아 결혼을 못 한다고 은근히 힐난할 때면 이 차장은 "내가 정해놓은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남자를 만나지 못하느니 혼자 사는 게 낫다"고 받아친다. 결혼한 친구들로부터 부부싸움,남편의 바람,별거,이혼 등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결정이 얼마나 현명한지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는 최근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아놓은 혼수준비금을 털어 서울 강남권에 32평 아파트를 장만했다. 자신의 여행 블로그를 본 출판 사업자로부터 출판 의뢰도 받았다. 이 차장은 "결혼해서 행복할 가능성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차라리 좋아하는 여행을 다니며 부업으로 여행작가를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골드싱글들은 때로 정신적인 동반자라는 뜻의 단어 '소울메이트'에 집착하기도 한다. '진정한 소울메이트를 만날 때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거나 '(결혼하지 않아도) 누군가와 소울메이트 관계면 족하다'는 식이다. 외로움은 덜고 싶고,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에는 항복하고 싶지 않을 때 소울메이트라는 존재가 적절한 핑계가 되는 셈이다.
◆외롭고 돈도 못 모을 땐 서글퍼
골드싱글들은 알고 보면 '백조'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약속을 만들고,자기계발과 직장일에 몰두한다. 그래도 한계는 있다. 외국계 제약회사의 이모 대리(34)는 "비올 때 동동주에 파전이 먹고 싶어서 비슷한 처지의 싱글들을 모았는데 다들 이런저런 약속이 있다거나 급한 일이 생겼다며 하나도 안 왔다"고 했다. 그는 "혼자 서울 회기역 파전골목에서 해물 파전에 동동주를 포장해 와 소파에서 울면서 먹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가정이 없으니 직장생활도 훨씬 마음 편하게 할 거라 생각하지만 이들의 속내는 정반대다. 이 대리는 "기혼자들이 알뜰하게 저축하는 것과 달리 싱글들은 번 돈을 그대로 다 써 버리는 경향이 강하다"며 "오히려 직장을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싱글 생활에 익숙해진 이들은 어렵게 결혼에 골인하더라도 싱글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모씨(여 · 37)는 "침대에서 남편 숨소리가 들리는 게 싫어 남편의 반대 방향으로 누워 잔다"고 털어놨다.
◆도금싱글 · 실버싱글 · 아이언싱글
경제적 여유를 갖고 풍요롭게 사는 골드싱글과 달리 '팍팍한 인생'을 고스란히 느끼며 사는 싱글도 많다. 수입이 많지 않으면서도 무리해서 럭셔리한 삶을 즐기는 이들은 '도금싱글(혹은 18K싱글)',풍족하지 않은 삶을 아쉬운 대로 영위하는 이들은 '실버싱글'이라고 부른다. 이혼 후 싱글이 된 '돌싱(돌아온 싱글)'들은 "우리는 골드나 실버도 아니고 그냥 아이언(iron · 철) 싱글"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결혼 후 10년을 다 못 채우고 이혼한 한 남성 싱글 직장인은 "회식 때 아이들 이야기,아내나 남편 이야기하는 게 싫어서 거국적인 회식엔 빠지고 마음 맞는 선 · 후배들끼리만 조촐하게 만난다"고 털어놨다.
이상은/이관우/이정호/정인설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