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 발주 한다더니" 목빠지는 조선업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브라질 페트로브라스 탈세 혐의에 발목
'자국업체 우선권'…입찰 들러리 설 수도
'자국업체 우선권'…입찰 들러리 설 수도
국내 대형 조선업체의 영업팀 A과장은 요즘 인터넷에서 외신을 뒤적이는 일이 잦다. 검색어는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입찰 공고 뜰 때가 지났는데…." 이곳 저곳 살펴보지만 입찰 소식은 없고 불안한 뉴스만 눈에 띈다. 페트로브라스가 국정조사를 받고 있다는 얘기부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까지."이러다 올해를 넘기는 것 아냐?" 조선업체 영업맨들은 애가 탄다.
브라질발(發) 대형 호재를 기다리던 국내 조선업체들이 지쳐가고 있다. 지난달로 예상했던 입찰이 뚜렷한 해명없이 지연되고 있다. 국내 조선업체들에 요구하는 조건도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분위기다. 수십조원짜리 초대형 수주를 터뜨려 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페트로브라스가 점점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말뿐인 대형 발주
페트로브라스는 오는 2017년까지 420억달러어치(약 50조원)의 해양플랜트와 관련 선박을 발주할 계획이라고 밝혀왔다. 지난 4월 수출보험공사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아미르 길헤르메 바르바사 페트로브라스 CFO(최고 재무책임자)는 "(전체 발주물량 가운데) 올해는 드릴십(원유 시추선) 7척과 FPSO(부유식 원유생산저장 설비) 8척 등 총 15척의 해양설비를 우선 발주할 계획"이라며 "많은 한국 기업들이 함께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6월 중 입찰 공고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외신을 타고 흘렀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사상 최대의 대박이 터질 것이라며 잔뜩 기대했다. 드릴십 등 고가 해양플랜트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7월 중순이 넘어가도록 브라질은 조용하다.
조선협회 관계자는 "브라질 의회가 조만간 페트로브라스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며 "페트로브라스가 발등에 떨어진 불똥을 치우느라 당초 예정됐던 발주 계획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페트로브라스는 탈세와 편법계약 등의 비리에다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조달이 순조롭지 못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중국 미국 한국 일본 등을 돌며 투자유치를 하고 있지만 금액이 워낙 큰 탓에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브라질 내 국수주의 여론도 암초
페트로브라스가 뒤늦게 입찰을 하더라도 당초 기대와 달리 국내 업체들에 아예 기회가 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페트로브라스가 '자국내 건조'라는 조건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체 관계자는 "국정조사라는 암초에 부딪힌 페트로브라스가 더욱 국수주의 여론에 휘둘릴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페트로브라스가 최근 브라질 조선업체를 대상으로 FPSO 8척에 대한 입찰을 실시하면서 이런 우려는 더욱 높아졌다. 이 물량에 대한 '국내 입찰'은 이번이 두 번째다. 작년에 실시된 첫 번째 입찰은 조건을 충족하는 업체가 없어 유찰됐다. 업계에서는 이 물량이 '국제입찰'로 돌려질 것으로 기대해 왔다. 현대중공업 STX 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브라질 조선업체의 컨소시엄에 끼어 입찰에 참여할 예정이지만 주도권을 브라질 업체가 쥐고 있는 만큼 큰 이익을 얻기는 힘들다.
페트로브라스가 요즘 들어 과도한 금융조건을 제시하는 것도 부담이다. 대형업체 관계자는 "선박 건조비용의 70~80% 이상을 조선업체가 직접 끌어오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생산기술과 인력에다 파이낸싱 부담까지 떠 안고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브라질발(發) 대형 호재를 기다리던 국내 조선업체들이 지쳐가고 있다. 지난달로 예상했던 입찰이 뚜렷한 해명없이 지연되고 있다. 국내 조선업체들에 요구하는 조건도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분위기다. 수십조원짜리 초대형 수주를 터뜨려 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페트로브라스가 점점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말뿐인 대형 발주
페트로브라스는 오는 2017년까지 420억달러어치(약 50조원)의 해양플랜트와 관련 선박을 발주할 계획이라고 밝혀왔다. 지난 4월 수출보험공사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아미르 길헤르메 바르바사 페트로브라스 CFO(최고 재무책임자)는 "(전체 발주물량 가운데) 올해는 드릴십(원유 시추선) 7척과 FPSO(부유식 원유생산저장 설비) 8척 등 총 15척의 해양설비를 우선 발주할 계획"이라며 "많은 한국 기업들이 함께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6월 중 입찰 공고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외신을 타고 흘렀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사상 최대의 대박이 터질 것이라며 잔뜩 기대했다. 드릴십 등 고가 해양플랜트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7월 중순이 넘어가도록 브라질은 조용하다.
조선협회 관계자는 "브라질 의회가 조만간 페트로브라스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며 "페트로브라스가 발등에 떨어진 불똥을 치우느라 당초 예정됐던 발주 계획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페트로브라스는 탈세와 편법계약 등의 비리에다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조달이 순조롭지 못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중국 미국 한국 일본 등을 돌며 투자유치를 하고 있지만 금액이 워낙 큰 탓에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브라질 내 국수주의 여론도 암초
페트로브라스가 뒤늦게 입찰을 하더라도 당초 기대와 달리 국내 업체들에 아예 기회가 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페트로브라스가 '자국내 건조'라는 조건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체 관계자는 "국정조사라는 암초에 부딪힌 페트로브라스가 더욱 국수주의 여론에 휘둘릴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페트로브라스가 최근 브라질 조선업체를 대상으로 FPSO 8척에 대한 입찰을 실시하면서 이런 우려는 더욱 높아졌다. 이 물량에 대한 '국내 입찰'은 이번이 두 번째다. 작년에 실시된 첫 번째 입찰은 조건을 충족하는 업체가 없어 유찰됐다. 업계에서는 이 물량이 '국제입찰'로 돌려질 것으로 기대해 왔다. 현대중공업 STX 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브라질 조선업체의 컨소시엄에 끼어 입찰에 참여할 예정이지만 주도권을 브라질 업체가 쥐고 있는 만큼 큰 이익을 얻기는 힘들다.
페트로브라스가 요즘 들어 과도한 금융조건을 제시하는 것도 부담이다. 대형업체 관계자는 "선박 건조비용의 70~80% 이상을 조선업체가 직접 끌어오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생산기술과 인력에다 파이낸싱 부담까지 떠 안고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