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소비자 사이에 유럽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하에 대한 기대가 높다. 하지만 브랜드 국적은 EU 국가여도 제품을 만든 곳이 어디냐에 따라 관세 혜택이 없는 경우도 많아 공연히 헛물을 켜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명품의 경우 원산지 기준을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관세 혜택이 갈릴 수 있다. 프랑스 '셀린느'의 경우 가방은 중국에서 생산되므로 원산지 기준상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한다. '버버리'(영국) 가방류나 '디올'(프랑스) 모피 제품,'자라'(스페인)의 재킷 니트 티셔츠류 등은 원산지가 중국이어서 가격 인하를 기대할 수 없다. 또 원산지가 EU에 속한다고 해도 의류 가방의 원단이나 부재료의 원산지가 EU산이 아닌 경우 혜택을 못 받을 수도 있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랑콤''비오템'은 프랑스 화장품이지만 아시아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들은 일본에서 생산해 국내에 들여오기 때문에 가격 인하 대상이 아니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이번 FTA 체결로 무조건 유럽산 제품들의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며 "관세청에서 어떤 품목들이 얼마만큼 세금 혜택을 받게 된다고 확정 · 통보해 올 때까지는 가격 인하에 대한 어떤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또 관세 철폐 기간도 3~15년에 달해 소비자들이 가격 인하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운 품목도 많다. 치즈 버터 혼합분유 연유 등에 붙는 관세(20~89%) 철폐 시한은 최장 15년이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치즈의 경우 관세(36%)가 0.5%포인트씩 순차적으로 낮아져 적어도 5년 정도는 가격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돼지고기도 단계적으로 관세가 철폐되는 만큼 업계 관계자들은 가격 인하 효과가 실질적으로 나타날지 의문이라고 보고 있다. EU산 돼지고기 수입의 70%를 차지하는 냉동 삼겹살(관세율 25%)은 10년에 걸쳐 관세가 철폐된다. 또 냉동 돼지고기는 5년,냉장 돼지고기는 10년이다. 이종경 네르프 대표는 "칠레산 돼지고기는 2004년 FTA가 체결된 이후 현재 19.9%의 관세가 붙고 있는데 이는 25%에서 5.1%포인트 하락한 것"이라며 "현재 칠레산 삼겹살 가격(1㎏ 5700원)이 그때보다 낮아졌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와인은 협정 발효 즉시 관세가 철폐되지만 유로화 강세,현지 물가상승률 등 변동 요인이 다양해 가격 인하 체감효과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는 "칠레와의 FTA 체결 때 당시 전문가들은 15%이던 와인 관세가 5년에 걸쳐 3%포인트씩 인하되는 수준이어서 가격 인하 효과가 거의 없을 것으로 봤지만 칠레산 시장점유율은 2.5배(수입액 기준 7%→18%)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와인업계 관계자는 "유로화가 지속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어 내년에 관세가 철폐되더라도 와인 값이 인상되지 않는 수준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상미/최진석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