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 기자 동행르포

쌍용자동차 임직원들이 14일 폭력으로 얼룩진 노사문화 탈피와 회사 재창조 의지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나흘간 평택~청와대 88㎞ 구간을 진행하는 도보 릴레이에 들어갔다.

첫날 참가한 생산2팀과 생산기술팀 임직원 100명은 평택과 오산을 잇는 1번 국도 위를 고립무원의 섬처럼 외롭게 걸었다. 50일이 넘는 노조의 점거 파업으로 조업이 중단되기 전만 해도 그들의 땀과 정성이 담긴 차량을 고객에게 실어 나르던 그 길이다.


"2006년 옥쇄 파업에 동참했을 때만 해도 몰랐습니다. 승진에서 누락됐다고 고참 생산 직원이 인사과로 올라와 컴퓨터를 부술 때도 '이건 아닌데'라고 막연히 느꼈어요. 하지만 이번에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동운동 방식을 뿌리 뽑지 않으면 쌍용차는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프레스 생산기술팀에 근무하는 6년차 이현규 대리(31)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외부 세력이 쌍용차가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 대리는 일하면서 대학 졸업장을 숱하게 원망했다고 말했다. 현장 관리직을 맡았으면서도 생산 라인에 작은 구멍 하나 뚫기가 어려웠다. 생산직 조합원들의 텃세 탓이었다. "생산 흐름을 원활하게 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라도 근로자들 허리 숙이는 일이 많아지면 안 된다고 노조가 가로막기 일쑤였다"고 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노조는 2000년부터 지금껏 16회에 걸친 파업으로 회사에 약 1조원의 매출 손실을 입혔다. 노조 전임자,근무시간 할애 등 노조에 들어가는 연간 비용만 58억원에 달했다.

"대의원도 했고 파업에도 숱하게 참여했다"는 28년차 한모씨는 "쌍용차 노조는 외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완전히 고립된 요새와도 같다"며 "비상식적인 것이 통하는 현실을 빨리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영진도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떠났지 않나. 이제 노조가 화답할 차례"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6일 노 · 노 충돌 이후 서로를 향한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 있었다. 한씨는 그날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오후 2시쯤에 날이 하도 더워 천막 치고 그 아래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였습니다. 가로 4m,세로 3m짜리 팔렛을 실은 지게차가 천막을 덮쳤어요. 처음엔 우리 쪽으로 올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살려고 철조망을 넘어뜨려 도망갔습니다. 경찰은 가만히 있더군요. 저녁에 우리가 용역 깡패를 동원했다는 뉴스를 보고 나니 정말 한국이 싫었습니다. "

송탄출장소 부근에서 11시30분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일행이 다시 길을 나설 무렵 이날 행렬의 책임자인 이원일 구매담당부장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서울에 들어서려면 집회 허가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경찰 측의 통보였다. "언제는 된다고 했다가 이제 또 안 된다네요. "

이날 오전 8시 평택운동장을 출발해 오후 4시께 오산시청에 도착한 이들은 20여㎞를 걷고 또 걸었다. 앞으로 나흘간 지원 부서,연구소 직원을 포함해 매일 100명씩 400명의 쌍용차 임직원들은 청와대까지 이어진 88㎞의 도로를 행진할 예정이다.

지난 5월22일 옥쇄 파업 이후 쌍용차는 이날까지 1만746대에 달하는 조업 차질을 겪고 있다. 금액으로는 2300여억원에 달한다. 올 1월 법정관리가 시작된 이후 영업사원도 절반가량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