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애인의 프러포즈를 받던 날 점쟁이로부터 '내일 애인이 다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무시하지만 다음날 공사 현장에 간 애인이 사고를 당한다. 점괘를 안믿은 탓이라고 여긴 그는 삶도 리셋할 수 있다는 말에 점괘를 믿기로 하고 이튿날 아프다는 핑계로 애인을 붙잡아둔다.

다행히 사고를 면한 걸 안 그는 점괘에 집착하고 애인은 이런 그를 참다 못해 떠난다. 좌절한 그에게 다시 리셋 기회가 주어진다. 식물인간이 된 애인을 등지려는 찰나 그가 자신을 위해 심장을 주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본 NTV 시리즈물 '리셋(reset)'의 내용 중 하나다.

리셋은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하는,이른바 '재설정'을 뜻한다. 전문용어로 탄생됐지만 점차 '완전히 바꾸다' '되돌리다' 등으로 의미가 확장되면서 일상용어화되고 있다. 스펙 리셋,리셋 클리닉,미 · 러 관계 리셋 등 곳곳에 쓰이는 게 그것이다.

리셋하고 싶은 게 어디 학력을 비롯한 취업조건이나 얼굴 · 몸매같은 외모,외교관계뿐이랴.삶이야말로 할 수만 있다면 리셋하고 싶다. '리셋증후군'(현실에서도 리셋이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현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하거니와 그 정도까진 아니라도 우리 모두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이 외쳤던 것처럼 꿈 많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기존의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고,아깝게 흘려보낸 시간과 실수로 놓친 기회도 되찾고 싶다. 그러나 두 번이나 리셋했는데도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드라마 속 주인공은 말한다. "난 도대체 뭘 보고 있었던 것인가. 믿어야 할 건 내 마음과 상대의 진심뿐이었는데."

'인생의 경우 리셋한다고 절로 좋아지는 게 아니다''자신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바꾸지 않은 채 시간을 돌려놔봐야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는 얘기다. 왜 아니랴.리셋을 바라기보다 언제 어디서든 간절한 마음으로 진심과 정성을 담아 움직일 때 소망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인생 자체가 리셋되진 않지만 살다 보면 어떻게든 리셋해야 하는 일도 있다. 부부 혹은 부모자식 사이도 그렇고 동료나 상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잔뜩 엉켜 꼼짝 안하면 리셋해야 한다. 그러자면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게 먼저다. 어디든 새것을 담자면 기존의 것을 죄다 쏟아내야 하듯 관계 재설정 역시 자신부터 비워야 가능할 게 틀림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