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가운데 가장 민감한 사안인 성씨(姓氏)의 표기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2000년 당시 문화관광부는 새로운 로마자표기법을 만들면서 성씨 표기에 대한 논란이 정리되지 않자 표기법에 "성씨의 표기는 따로 정한다"라고 유예규정을 두었다. 그 후 10년이 되도록 이를 따로 정하지 않다가 이제 다시 이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로마자표기법 제정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국립국어원은 성씨 표기에 대해 로마자표기법의 원칙을 최대한 수용하면서,'ㄱ'을 가진 성씨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원칙의 G가 아닌 K로 적는 것을 허용하고 이씨,오씨,우씨 등에 대해서도 Yi,Oh,Wu 등의 예외적 표기를 허용하는 시안을 발표했다.

대외교류가 활발할수록 국어의 로마자 표기는 개인이나 단체의 정체성을 외국인에게 인식시키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성씨뿐만 아니라 회사나 단체의 이름 등도 표기법이 서로 달라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예를 들면 김씨는 99%가 Kim으로,박씨의 경우는 98%가 Park으로 자신의 이름을 적고 있지만 전씨는 23가지,정씨와 유씨는 17가지나 되는 다양한 표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상은 표기규정을 너무 자주 바꾸고 교육과 홍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현행 교육과정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에서 로마자표기법에 대해 교육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실제 우리가 자신의 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시기는 영어교육이 시작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현재 우리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공식적인 영어교육을 하고 있다. 그런데 로마자표기법을 고등학교에 와서 가르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홍보도 더 적극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국민 대다수는 로마자표기법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

최근 현행 로마자표기법에 대한 개정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이 있다. 만약 또 다시 로마자표기법이 개정된다면 우리는 로마자표기법에 관해서는 국제적으로 일관성없는 국가로 인식될 것이고 국내적으로도 로마자표기가 정착되기 어려울 것이다. 로마자표기법의 특성상 완벽한 표기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은 다소 부족한 규정이라 하더라도 이를 널리 교육하고 홍보해 우리 것으로 만들어 나가려는 정책당국의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경일 <건양대 문학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