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영국과 러시아 청나라 등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속에서 위구르 독립국가를 꿈꿨던 야쿱 벡(1820~1877)의 꿈은 21세기 레비야 카디르라는 위구르 여성 지도자를 통해 실현될 수 있을까.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하면서 위구르인의 '대모'로 불리는 레비야 카디르 재미(在美) 위구르협회장(62)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 정부가 유혈 시위 배후로 카디르를 집중 공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카디르는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고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했을 뿐"이라며 중국 당국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이와 함께 위구르인에 대한 중국의 무력 진압에 대항해 전 세계적인 시위를 벌이겠다는 투쟁 방침도 분명히 했다.

1947년생인 카디르는 한때 성공한 여성 사업가로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97년 신장위구르자치구 이닝 지역에서 시위를 벌이던 위구르족을 중국 군이 유혈 진압한 사건을 접한 뒤 위구르의 투사로 변신했다. 위구르인 피해를 정협에서 폭로하면서 중국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이어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수감 생활을 했다. 2005년 석방돼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2006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카디르는 130여년 전 위구르 독립국가를 이끌었던 야쿱 벡이라는 위구르 지도자와 공통점이 적지 않다. 두 사람 모두 강압적인 중국의 통치로 촉발된 대규모 위구르인 봉기를 계기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로 성장했다.

1864년 청나라 신장 지역에 살던 위구르 무슬림들은 청조의 지배에 항거해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회흘(回紇)이라고 불린 위구르인들은 '회교(回敎)'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이슬람교도가 대다수이다. 위구르 무슬림의 봉기에 맞춰 호칸드한국 출신인 야쿱 벡은 1865년 신장 지역으로 진출,1867년까지 카슈가르와 야르칸드 등 동투르키스탄 전역을 석권했다. 이어 위구르 독립국을 선언한 야쿱 벡은 러시아와 영국,청나라 간 세력 균형을 활용하며 우루무치 등 오늘날 신장 지역을 10여년간 통치했다. 하지만 실지 회복에 나선 청나라와 전투를 벌이던 중 야쿱 벡은 1877년 독살되고 신장은 다시 중국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야쿱 벡의 무덤도 1878년 중국인들에 의해 초토화되며 위구르 독립의 꿈은 사라지게 된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