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드라마 영향 때문인지 '왜 우리 수사기관은 과학수사를 안 하고 조사실에 앉아 자판만 두드리느냐'는 비판이 많다. 그러나 과학수사가 만능은 아니다. 외국 드라마의 소재가 항상 살인이나 강간 등 일부 강력범죄에만 국한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

검찰이 수사배심제 도입을 검토하며 최근 발표한 '수사절차상 국민참여제도 도입방안 연구'에 나온 내용이다. 수사배심제는 검찰이 일반 국민들로 구성된 배심단으로부터 기소여부를 승인받는 제도.검찰수사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지만 배심단이 참고인과 피의자를 강제 소환할 수 있고 거짓 진술에 대해 처벌이 가능해 사실상 검찰 수사권 강화 방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과학수사할 생각은 안하고 진술을 손쉽게 받을 생각만 한다"는 비판이다.

이를 예상했는지 검찰은 연구에서 "자백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사건은 자백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현금으로 뇌물을 수수하는 경우는 증거가 남지 않아 과학수사가 직접적인 해결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검찰은 또 "과학수사기법이 발달했다는 미국의 대부분 사건이 플리바게닝으로 종결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플리바게닝은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면 그 대가로 가벼운 범죄로 기소하는 제도로,한국에서는 "허위 자백을 남발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도입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한 검사는 "플리바게닝이 없다면 미국 검찰도 현재 사건의 5분의 1도 처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수사배심제,플리바게닝 등을 도입해 검찰 수사권 강화를 꾀해볼 만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 · 흉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다. 국민들은 검찰이 강화된 수사권을 사법 정의 구현이 아닌 피의자와 참고인의 인권침해에 악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최근 '박연차 게이트'수사를 통해 피의사실공표 등 검찰의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진 상황이다. 선진국 검찰이 가진 강한 수사권을 탐내기 전 그들이 국민들로부터 받는 강한 신뢰부터 먼저 얻어내야 한다. 이른바 '미드(미국드라마)' 등 외국 드라마에서 검찰이 배워야할 것은 비단 과학수사뿐만이 아닐 것이다.

임도원 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