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장님,저희는 외상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선수금 거래,현금 거래 원칙에 따라 현금으로 제품 값을 먼저 계산해 주십시오."

언뜻 들으면 유통망을 좌지우지할 힘을 가진 대기업의 배부른 소리 같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유통망 확보가 절박했던 한 중소기업이었다. 20년간 대기업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로 지내다 갓 자사 브랜드를 출시한 참이었다. 어떤 기업이 이런 배짱을 부렸을까? 바로 쿠쿠(CUCKOO) 전기압력밥솥으로 유명한 쿠쿠홈시스(이하 쿠쿠)다.

1998년 첫 자사 브랜드 출시 후,1년 3개월 만인 1999년 7월 쿠쿠는 대기업들을 모두 제치고 시장 1위 업체로 올라섰다. 2008년에는 매출 3000억원을 달성했다. 이런 놀라운 성공을 가능케 한 것이 철저한 '원칙경영'이었다.

10년 전 쿠쿠의 '선수금 거래,현금거래' 영업 원칙을 처음 들은 유통업체들은 코웃음을 쳤다. 쿠쿠는 이 영업원칙 때문에 제품을 출시하고 4개월 동안 밥솥을 한 대도 팔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원칙을 바꾸지 않았다. 쿠쿠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제품을 외상으로 주면 유통망 측에서 소중히 다루지 않게 된다. 우리가 자식처럼 '빚어서' 우리 이름을 걸고 파는 제품을 그렇게 방치할 수는 없다. " 창업자인 구자신 회장은 쿠쿠의 영업 원칙이 나온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쿠쿠의 원칙 경영은 과감한 마케팅 전략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제품력이 뒷받침된 덕분에 대리점들은 하나둘씩 늘어갔다. 하지만 대리점 입장에서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쿠쿠 밥솥을 팔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일일이 제품을 설명해줘야 했다.

이를 번거롭게 여긴 대리점들은 '사은품을 주든지,광고를 하든지 무슨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쿠쿠는 사은품이 아닌 광고를 선택했다. 물론 사은품을 끼워주는 게 더 쉽다. 효과도 즉각 나타난다. 하지만 이는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쿠쿠는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 광고에 수십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중소기업 형편으로는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큰 돈이었다. 이러한 과감한 투자도 '브랜드를 지키겠다'는 쿠쿠의 원칙경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브랜드가 중요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쿠쿠의 브랜드 경영이 특히 돋보이는 이유는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한 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했다는 점이다. 쿠쿠(CUCKOO) 브랜드에 담긴 비밀 한 가지. 뻐꾸기,밥짓는 소리,요리 등 많은 의미가 있지만, '쿠(KOO)'는 창업주의 성(姓)인 '구'에서 따온 것이다. 자기 이름을 건다는 것.그 막중한 책임감이 철저한 원칙경영을 가능하게 했고,오늘날의 쿠쿠를 만든 셈이다.

IGM 세계경영연구원 조미나 상무/최미림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