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를 보여 드려야 하는데…."

삼성전자가 올 하반기 글로벌 휴대폰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전략 모델 '제트'를 디자인한 이민혁 수석 디자이너(37)는 "디자인의 영감을 어디서 얻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쉬운 듯 설명을 이어 갔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선 나를 비우는 작업이 필요해요. 바이크를 타고 달리다 보면 머릿속이 맑아지죠.자연에서 새로운 생각을 얻습니다. " 그는 주말이면 이탈리아산(産) 모터사이클 '모토구치'를 타고 서울 근교로 나간다.

그는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를 존경한다. "가우디가 자연 그 자체를 건축 디자인으로 옮겨 오듯 휴대폰 디자인도 자연에서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제트의 날렵한 느낌은 나무 잎사귀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제트는 삼성전자의 터치스크린 휴대폰 가운데 처음으로 유선형 곡선의 미를 잘 살린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수석은 휴대폰의 네 모서리를 날씬한 원형(圓形) 처리로 부드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기술력 덕분이라고 했다. "휴대폰은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이기 때문에 단 1㎜를 줄이는 것도 엄청난 노력의 결과물"이라며 "손에 쥐는 느낌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고 강조했다.

제트에는 삼성 휴대폰의 다양한 시도들이 담겨 있다. 뒷면은 마치 '태양광 패널'을 장착한 것과 같은 느낌으로 3차원(3D) 효과를 살렸다. 뒤태만 봐도 삼성 제트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터치스크린 밑에 있는 가운데 버튼은 육각형 형태로 처음 제작했다. 화면에 나타나는 큐브(정육면체) 모양 3차원 사용자 환경(UI)과의 일체감을 주기 위한 시도다.

이 수석은 국내 시장에 곧 출시할 2세대 터치폰 '햅틱 아몰레드'도 디자인했다. "제트와 아몰레드는 크기의 차이를 빼면 디자인이 비슷하다"며 "다만 아몰레드는 3차원 느낌의 뒷면 패턴을 다소 다르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수석은 대학 시절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했다. 첫 직장도 삼성자동차였다. "자동차를 그대로 줄여 놓으면 휴대폰과 비율이 꽤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휴대폰을 디자인할 때 자동차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곤 하죠."

우연의 일치인지 그가 삼성전자에 입사해 처음으로 디자인을 주도한 제품이 바로 '벤츠폰'(SGH-E700)이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1000만대 이상 팔려 나간 이 제품으로 이 수석은 주목받게 됐고 이후 블루블랙폰(SGH-D500),울트라에디션,소울폰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 냈다.

"벤츠폰을 기획할 때 세상에는 수천 가지의 폴더형 휴대폰들이 있었어요. 디자인을 차별화하기 어려웠죠.그때 생각해 낸 것이 안테나를 아예 잘라 버리는 거였죠.어떻게 그런 휴대폰을 만드느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결국 해 냈어요. " 이 수석은 요즘 자신만을 위한 단 하나의 휴대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