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79세(세계보건통계 2009).전년보다 0.5세 늘었다. 사고만 아니면 우리 나이로 80세까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2009년 현재 직장인의 체감 정년은 43.9세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현 직장에서의 예상 정년을 물어본 결과다.

같은 조사에 대한 지난해의 답은 48.4세.1년 동안 4.5세나 줄었다. 수명은 느는데 같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고 보는 시기는 단축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지난해 국내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중 76곳의 평균 근속연수는 10.9년.1위인 KT가 19.4년이고 삼성전자는 7.2년에 불과하다.

28세에 취업한다고 쳐도 38.9세,세는 나이로 마흔이 안 돼 떠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통계수치를 들이댈 것도 없다. 노조의 보호막이 두터운 제조업 기술직은 몰라도 일반 사무직의 경우 회사에서 수시로 외부 인물을 스카우트해오는 통에 과장 팀장 같은 중간간부들은 노상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는 마당이다.

딱히 나가라고 하진 않는다 해도 실적 운운하며 비슷한 업무를 담당할 사람을 데려오면 눈치껏 자리를 내줘야 하는 만큼 겉으론 태연한 척 해도 속은 새까맣게 탄다는 것이다. '삼팔선 사오정'이란 말이 한때의 유행어가 아닌 셈이다. 젊으니 뭔들 못하겠느냐고 하지만 정작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인생 이모작을 해야 한다지만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사업을 해볼 만한 자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 야근하고 눈치 보고 윗사람은 물론 아랫사람의 비위까지 맞추려 애써보지만 커다란 물결을 피하긴 쉽지 않다. 과장이나 팀장들의 처지가 이렇다 보니 아래 직원들의 마음도 편할 리 없다.

취업의 기쁨도 잠시,3~4년차만 돼도'분장실 강선생'같은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초조해진다는 것이다. 자연히 취업 후에도 직장생활 틈틈이 외국어 공부를 하고 MBA를 비롯한 석 · 박사 학위를 따는 등 스펙 리셋도 해보지만 불안한 건 비슷하니 주식 투자 등 업무 외적인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늘어난다고도 한다.

외환위기 이후 달라졌다지만 그 이전까진 웬만하면 정년을 채울 수 있다고 여겨 모든 것을 회사에 걸었던 중장년층과 달리 지금 취업하는 세대는 늘 전전긍긍하면서 지낸다는 말이다.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자면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래가 불안하면 로열티는 생기기 어렵다.

43.9세는 퇴직하기에 너무 젊은 나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덫이다. 게다가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일도 아니니 미리 겁 먹을 것도 없다. 코카콜라 회장을 지낸 브라이언 다이슨은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끝나는 건 없다며 어떤 경우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배울 기회로 삼으라고 말했다.

장 · 단기 목표를 정하고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면서 능력을 키워가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게 마련이다. 다이슨은 과거나 미래에 집착해 삶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하지 말라고 했거니와 일상에 함몰되지 말고 스스로 독자적인 브랜드가 되도록 노력해야지 불안한 마음에 여기저기 한눈 팔면 죽도 밥도 안된다.

회사 또한 가능한한 고용 불안을 덜어주고 직원의 능력 발굴과 재교육에 투자,어디서든 자신의 몫을 다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또 말로만 창의적 인재를 찾는다고 할 게 아니라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는 직원을 인정해줘야 마땅하다. 튄다고 미움받을까 겁내는 풍토에선 개인과 조직 모두 발전하기 어렵다.

하후상박 임금구조도 재고할 때가 됐다. '좋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라지만 입사 10년 만에 초라해지는 선배를 보는 후배들에게 열정과 충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선배의 오늘은 후배의 내일인 까닭이다. 일에 대한 몰입,상사에 대한 존경,조직에 대한 헌신은 당장의 봉급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이끌어낸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