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얼떨떨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인가 봅니다. 두바이의 대형 미술품 유통업체 '퍼블릭아트&디자인 컨설턴트'가 제 작품 100호 이상 대작 100여점(10억~12억원 상당)을 구매하기로 했거든요.

지난달 영국 유명 인테리어 회사 'SMC아트 컨설턴시'가 작품 매입을 제의해온 데다 스위스 제네바 아트페어,독일 칼슈르에 아트페어에서 팔린 작품까지 합하면 연말까지 최소 15억원 상당의 외화를 벌어들일 것 같아요. "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17~23일)을 갖는 서양화가 정현숙씨(53 · 대진대 교수)는 9일 기자와 만나 "지난해 영국 런던 스코프 아트페어에서 만난 두바이의 미술품 유통 업체 '아트&디자인'이 최근 제 그림 100여점을 전량 사기로 했다"며 "금명간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의 미술품 유통 업체가 국내 미술품을 대량 구입키로 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오일머니'가 본격적으로 한국 미술시장을 사정권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씨는 "한국 회화 작품이 서양적인 기법으로 동양적인 윤회 사상을 응용한 덕분인지 두바이 컬렉터들의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두바이 등 중동사람들로부터 작품 속에 동서양의 기질을 잘 버무려내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화여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원을 나온 정씨는 미술계에서 '동그라미' 작가로 통한다. 1980년대 화업 초기에 들꽃을 소재로 서정적인 추상화에 빠져들었던 그는 1990년대 들어 원형의 번짐 효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단순화시킬 수 없는 완전한 형태인 원형이야말로 모성적인 시간과 생명,끝도 시작도 없는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이미지라고 생각해서다.

"링거병에 묽은 아크릴릭 물감을 넣은 다음 이를 캔버스에 떨어뜨린 후 은근한 자취를 남켜 자연의 순환을 추적했습니다. 1998년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우리 주위를 늘 맴도는 삶과 죽음,만남과 이별의 순환과 화해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그 산물이 원형 작업입니다. "

최근에는 평면에서 입체로 한걸음 나아가며 다양성도 보탰다. 이전의 작업이 원형을 찾아가는 단일의 세계였다면 신작은 원형과 사각이 이뤄내는 우주론적 조화와 상생을 꾀하고 있다. 첨성대를 비롯해 다보탑,고려청자,나비를 본뜬 작품 등 서양의 기법으로 한국 고유의 문화를 오버랩시키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그는 2005년 독일 퀼른아트페어를 시작으로 스위스 제네바,독일 칼슈르에,영국 런던 스코프,미국 시카고아트페어 등 지구촌 아트페어를 찾아다니며 자신을 알렸다. 해외 아트페어에서 서너점씩 작품이 팔려나가자 작품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오는 12월 1~7일에는 도쿄 미시코시 백화점에서 대규모 초대전도 갖는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자연의 순환'.어둠과 밝음,만남과 이별,차가움과 따스함,절망과 희망이란 자연의 순환을 담아낸 대작 30여점이 걸린다. (02)736-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