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허머'를 만들던 중국이 진짜 '허머'의 새 주인이 됐다. "(USA투데이)

중국 중장비 업체 쓰촨 텅중이 2일 제너럴모터스(GM)의 '허머'(Hummer · 사진) 브랜드를 인수하자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놀라움과 당혹감을 쏟아냈다. 크라이슬러에 이어 GM까지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등 세계 자동차 업계 최강자인 미 '빅3'가 무너지면서 급기야 미 오프로드 자동차의 자존심인 허머가 중국의 이름모를 업체에 팔려가는 신세로 전락했다는 허탈감의 표현이다. 중국 업체가 미국 자동차사를 인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특수기계와 건설용 중장비 등을 만드는 텅중은 허머 인수를 발판으로 최고급 오프로드 자동차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GM과 부품공급 계약도 맺기로 했다. 매각가격은 5억달러 선으로 추정되며 인수 절차는 9월까지 마무리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중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미군의 대표적 군용 차량인 험비 생산공장을 보유한 허머를 사들였다는 분석이 나오는 등 매각을 둘러싼 논란이 시끄럽다. 허머는 험비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개량한 것이며 GM이 1999년 방위산업체 AM제너럴로부터 상표권과 판매권을 넘겨받았다.


◆자동차 쇼핑 나선 브릭스

최근 중국 러시아 인도 등 브릭스(BRICs) 국가의 업체들이 글로벌 자동차 인수 · 합병(M&A)의 승자로 등장하는 사례가 자주 생겨나고 있다. 지난달엔 러시아 자동차업체 가즈가 캐나다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와 손잡고 GM유럽의 '오펠'과 '복스홀' 브랜드의 새 주인이 됐다. GM유럽 인수를 통해 글로벌 2위로 도약하겠다던 이탈리아 피아트는 고배를 마셨다. 작년엔 인도의 타타자동차가 영국 왕실의 의전용 차량으로 유명한 '랜드로버'와 최고급 세단 브랜드인 '재규어'를 손에 넣었다.

브릭스 업체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미국 자동차업계가 몰락하고 유럽과 일본이 주춤하는 사이 앞선 기술력과 브랜드 이미지를 갖춘 회사를 사들여 선진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 중이다. 인도의 타타와 마힌드라앤드마힌드라는 내년 초 미국시장의 문을 두드릴 계획이며 중국의 비야디(BYD),치루이,지리,브릴리언스 등도 미국 진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매물로 나와있는 거의 모든 자동차 브랜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볼보(포드)는 지리와 치루이,창안자동차가 눈독을 들이고 있으며 GM의 호주 자회사인 GM홀덴은 치루이,스웨덴의 사브는 둥펑자동차가 인수 의사를 밝힌 상태다. 러시아는 정부가 앞장서 인수전에 나서고 있다.

◆믿을 건 브릭스 시장뿐

브릭스 업체들이 '자동차 쇼핑'에 앞다퉈 나서고 있는 건 급성장하는 자국 내수시장을 지키기 위한 측면도 크다. 지난해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의 자동차 시장은 1715만대로 미국(1349만대)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올해는 중국 내 자동차 판매가 1020만대로 확대돼 판매가 급감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를 전망이다. 브라질은 지난해 내수 판매 대수가 282만대로 2007년 전세계 9위에서 6위로 뛰어올랐다.

자동차 보급률 역시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미국(보급률 90%) 일본(50%) 등 선진국보다 낮아 내수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크다. 러시아 20%,브라질 13%,중국 3%,인도 1% 수준에 그친다.

토종 브랜드 비중이 내수시장의 34.5%(2008년 기준)를 차지하는 중국은 선진 브랜드 M&A와 합작,기술제휴 등을 통해 자생력을 키워 36.4%대인 유럽 · 미국 브랜드를 누른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의 전략도 브릭스로 쏠리고 있다. 피아트는 GM의 남미 러시아 중국 사업부문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현대 · 기아자동차는 생산비중이 55%에 달하는 소형차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시장 공략을 강화할 방침이다.

김미희 기자/베이징=조주현 특파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