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시인(50)은 신작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의 '시인의 말'에 아리송한 문장을 남겼다.

'고운 봄날 이 거친 시집을 꽃 피는 시집으로 잘못 알고 찾아오는 나비에게 오래 머물다 가진 마시라고 해야겠다'는 말뜻이 못내 궁금해 충청북도 보은군에 살고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썩 잘된 시들일 수 없어 너그럽게 읽어달라는 뜻"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겸양의 말.그는 채송화,칸나,코스모스,나비,종달새,고양이 등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해 희미해져 버린 일상의 존재들을 꿈틀거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이 책은 소인국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을 땐 쪼그려 앉아야 한다// 책 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채송화> 중)처럼 동화같은 도입이 눈에 띈다. 그런데 그 안에는 '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만년필> 중)는 듯 단호한 눈매가 도사리고 있다.

꽃의 아름다움 외에 꽃이 뿌리박고 있는 거친 현실도 응시하는 식이다. 문학평론가 신범순씨는 "그의 동화적 상상력과 언어는,이 차갑게 얼어붙고 오염되어 쓰레기터처럼 변해가는 세상에서 솟구치는 것"이라고 평했다.

<반달곰이 사는 법>에서는 '저녁이면 하늘을 닦거나 등성을 밝히는 꽃등의 심지에 기름을 붓고 등산객들이 헝클어놓은 길을 풀어내 다독여주곤 한다'고 반달곰 부부의 일상을 낭만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다가 '그런데,반달곰 씨의 가슴에는 큼직한 상처가 있다 밀렵꾼들의 총에 맞아 가슴의 반달 한쪽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중략) 그대들,곰은 이미 사라져갈 운명이니 그 가슴의 반달이나 떼어 보호하는 게 어떤가 하고'라며 이면을 비춰준다. 이에 대해 송씨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비난하면서도 체념하거나 달관한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고 설명했다.

송씨는 이번 시집의 소재를 주변에서 얻었다고 했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행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고 노래한 표제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도 시인의 집 바깥에서 귀찮을 정도로 많이 서성거리는 들고양이들을 보고 지었다. 집과 동네에 흔하다는 맨드라미,칸나,접시꽃,백일홍도 시에 종종 등장한다.

그는 등단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낸 시집이 고작 4권일 정도로 과작(寡作)하는 시인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