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살아있는 마더 테레사'…3만2000명을 살린 그녀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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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캐서린 햄린 지음/ 이병렬 옮김/ 북스넛/ 408쪽/ 1만3500원
캐서린 햄린 지음/ 이병렬 옮김/ 북스넛/ 408쪽/ 1만3500원
'살아있는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캐서린 햄린 여사(84).호주 태생의 산부인과 의사인 그는 50년간 에티오피아에서 3만2000여명의 임산부를 살려낸 '천사의 손'이다.
그는 1959년 봄 남편과 함께 여섯살 난 아들을 데리고 의료봉사를 위해 에티오피아로 향했다. 먼지가 뽀얗게 날리는 비포장 활주로와 가난에 찌든 사람들,숨을 쉬기조차 힘든 찜통 더위 속에서 그는 절망에 빠진 여인들을 만났다.
도착하자마자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 그는 3년의 계약 기간이 지나고도 그 곳을 떠나지 못했다. 환자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실려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난산이나 사산으로 장기에 구멍이 뚫리는 병인 '누'로 고통받고 있었다. '누'는 나이 어린 임산부가 사산 과정에서 입게 되는 대장과 요도 사이의 상처를 말한다. 상처가 구멍으로 바뀌면서 대 · 소변을 제어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산모도 사망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병원이 전무하다시피 한 에티오피아에서 누에 걸린 임산부들은 거의 혼자 죽음을 맞고 있었다. 가족의 냉대와 사회의 무관심이 그들을 더욱 큰 절망으로 몰아갔다. 움막집에 방치된 채 고통과 자책에 시달리다 외롭게 죽어가는 여인들의 비극을 보다못한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에티오피아에 완전 무료 누 전문병원을 지었다. 병원 운영자금은 간간이 미국과 호주 등에서 기부금을 모아 충당했다.
남편이 1993년 세상을 뜬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에티오피아에 머물면서 3만2000여명의 누 환자들을 치료했다. 3년간의 일정으로 시작한 '봉사'에 5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바친 것이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영국과 호주에서 훈장을 받았고 ANZAC 평화상과 영국 왕립외과대학 금메달을 받았으며 노벨평화상 후보로 여러 차례 지명됐다.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은 그가 남편과 함께 1959년부터 지금까지 에티오피아에서 활동한 의료 기록과 자신들의 인생을 일기처럼 써내려간 자전적 에세이다.
'검은 땅'에서 평생을 헌신한 백인 의사의 공적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이 겪은 일들과 만나온 환자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간절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가 내면을 울린다.
그는 왕정 시대와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내전 등을 차례로 겪지만 에티오피아를 집으로 여기며 지금도 환자들을 돌보고 병원을 세우며 의사와 간호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 가운데 간호사가 된 경우도 많다. 그들은 환자들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기 때문에 훨씬 뛰어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격려도 해줄 수 있다.
그는 지난해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만든 조산학교에서 현재 12명의 조산원이 교육을 받고 있지만 수천명에 달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며 "시골에 25개의 출산 전용 병원을 세우는 것도 시급한 현안"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영국과 호주 정부,유엔 등이 후원금을 지원하고 개인 기부자들의 참여도 늘고 있어 그의 의료봉사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그의 병원이 있는 아디스아바바가 '새들의 꽃'이라는 의미로 불리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팔순이 넘었지만 그는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 수술실에 직접 들어간다. "한순간도 은퇴를 해야 할 것 같다거나 인생을 바꾸고 싶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이 일이 부담스럽거나 귀찮은 적이 없다는 게 나 자신도 놀랍죠."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그는 1959년 봄 남편과 함께 여섯살 난 아들을 데리고 의료봉사를 위해 에티오피아로 향했다. 먼지가 뽀얗게 날리는 비포장 활주로와 가난에 찌든 사람들,숨을 쉬기조차 힘든 찜통 더위 속에서 그는 절망에 빠진 여인들을 만났다.
도착하자마자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 그는 3년의 계약 기간이 지나고도 그 곳을 떠나지 못했다. 환자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실려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난산이나 사산으로 장기에 구멍이 뚫리는 병인 '누'로 고통받고 있었다. '누'는 나이 어린 임산부가 사산 과정에서 입게 되는 대장과 요도 사이의 상처를 말한다. 상처가 구멍으로 바뀌면서 대 · 소변을 제어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산모도 사망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병원이 전무하다시피 한 에티오피아에서 누에 걸린 임산부들은 거의 혼자 죽음을 맞고 있었다. 가족의 냉대와 사회의 무관심이 그들을 더욱 큰 절망으로 몰아갔다. 움막집에 방치된 채 고통과 자책에 시달리다 외롭게 죽어가는 여인들의 비극을 보다못한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에티오피아에 완전 무료 누 전문병원을 지었다. 병원 운영자금은 간간이 미국과 호주 등에서 기부금을 모아 충당했다.
남편이 1993년 세상을 뜬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에티오피아에 머물면서 3만2000여명의 누 환자들을 치료했다. 3년간의 일정으로 시작한 '봉사'에 5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바친 것이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영국과 호주에서 훈장을 받았고 ANZAC 평화상과 영국 왕립외과대학 금메달을 받았으며 노벨평화상 후보로 여러 차례 지명됐다.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은 그가 남편과 함께 1959년부터 지금까지 에티오피아에서 활동한 의료 기록과 자신들의 인생을 일기처럼 써내려간 자전적 에세이다.
'검은 땅'에서 평생을 헌신한 백인 의사의 공적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이 겪은 일들과 만나온 환자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간절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가 내면을 울린다.
그는 왕정 시대와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내전 등을 차례로 겪지만 에티오피아를 집으로 여기며 지금도 환자들을 돌보고 병원을 세우며 의사와 간호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 가운데 간호사가 된 경우도 많다. 그들은 환자들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기 때문에 훨씬 뛰어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격려도 해줄 수 있다.
그는 지난해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만든 조산학교에서 현재 12명의 조산원이 교육을 받고 있지만 수천명에 달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며 "시골에 25개의 출산 전용 병원을 세우는 것도 시급한 현안"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영국과 호주 정부,유엔 등이 후원금을 지원하고 개인 기부자들의 참여도 늘고 있어 그의 의료봉사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그의 병원이 있는 아디스아바바가 '새들의 꽃'이라는 의미로 불리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팔순이 넘었지만 그는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 수술실에 직접 들어간다. "한순간도 은퇴를 해야 할 것 같다거나 인생을 바꾸고 싶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이 일이 부담스럽거나 귀찮은 적이 없다는 게 나 자신도 놀랍죠."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