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자살 소식을 접한 검찰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를 직접 소환 조사하고,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로 수사를 확대하면서 노 전 대통령 측을 압박해온 터라 검찰은 무척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노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만큼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검찰의 수사는 이날부터 전면 중단됐다.

김경한 법무장관은 상황을 보고받자마자 오전 10시 실 · 국장급 간부 전원을 소집해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임채진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 역시 사고 소식을 접한 즉시 정확한 경위 파악을 지시하는 한편 검사장급 이상 대검 간부들이 전원 청사로 출근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40분까지 긴급회의를 열었다. 임채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형언할 수 없이 슬프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은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장례식에 참여할 수 있게 29일 오후 5시까지 구속집행정지 명령을 내렸으며 건평씨는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봉하마을로 향했다.

법무부와 검찰 관계자들은 망연자실하며 향후 사건이 몰고올 정치적 파장과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수사,나아가 검찰 조직 전체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의 칼날이 노 전 대통령을 겨냥했던 만큼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검찰 간부는"수사절차상 전직 대통령임을 고려해 많은 예우를 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도 못했다"며 무척 당황해했다.

검찰은 이번 주말 권양숙 여사를 비공개 소환 조사해 100만달러와 추가로 드러난 45만달러에 대해 추궁할 예정이었다. 검찰은 권 여사를 조사한 뒤에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수사계획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과 함께 중단되며,이에 따라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수사 자체도 어그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검찰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과 별개로 진행돼 온 천신일 회장 혐의 건 등 다른 부분 수사는 지금 논할 단계가 아니며,사태가 수습되고 난 뒤 중수부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600만달러와 40만달러,억대 시계 등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뇌물수수 의혹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아들,딸,부인을 모두 조사했으나 전부 '참고인'이라고 선을 긋고 오로지 노 전 대통령만을 겨냥해 수사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검찰은 기소가 어려워졌으며,가족이나 친인척 · 측근들에 대한 더 이상의 수사도 의미가 없어졌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돈을 건네받았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그의 가족과 친인척,측근들을 모두 수사하는 저인망식 수사를 펼쳐왔으며 노 전 대통령의 혐의 입증을 자신해 왔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과 야당으로부터 무리한 수사,집요한 정치보복이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전면 중단하되 박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나머지 인사들에 대한 수사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공소권 없음'은 피의자가 사망하거나 공소시효가 만료될 경우 범죄성립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어쨌거나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는 조기에 종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찰 관계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이 상황에서 수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서둘러 수사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