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이후 강세장에서 이어지고 있는 외국인의 한국주식 대량매수는 장기 투자하는 롱텀펀드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처음으로 증시에 들어와 3000억원 넘게 주식을 매수하는 등 새로운 장기투자자들이 속속 가세하고 있어 외국인의 순매수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국내 증시의 변동성도 크게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외국인의 추가 매수 규모는 주요 기업들의 수익성 개선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뤄지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유력 연기금 · 국부펀드 등 속속 들어와

금융당국은 외국인의 주식 매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던 지난 3월10일부터 이달 10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이들의 투자 성향을 분석했다. 이번 조사는 전 세계 펀드들이 대부분 등록돼 있는 룩셈부르크와 미국의 투자회사,미국 연기금 등 주식매매가 1년에 한 번 미만인 투자자를 장기 성향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미국의 대형 F사,룩셈부르크 소재 R,S,B 등 대형 투자사들의 주식 매입이 돋보였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이 같은 외국인의 장기 투자 증가는 우리 경제의 빠른 회복 덕분이라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17일 "외국인 주식 매수는 아시아 이머징마켓에서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한국 시장에서 특히 두드러진다"며 "중국의 고성장 지속에 따른 수혜를 가장 많이 누리는 등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실제 캐피털 피델리티 템플턴 얼라이언스번스타인 등 국내에서 활동 중인 대형 외국펀드들은 최근 한국주식 매수를 확대하고 있다.

이달 들어 캐피털그룹은 하이트맥주 지분 5%를 가진 새로운 대주주로 등극했고,피델리티는 코리안리 CJ오쇼핑 등의 지분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임경근 ABN암로 상무는 "한국증시가 상대적으로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어 최근 수년 동안 매도에 치중했던 장기 투자 성향의 외국인들이 한국 비중을 다시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부터 4년 연속 한국주식을 매도하며 72조원의 매물폭탄을 쏟아냈던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중동계 자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처음으로 한국주식 3142억원어치를 사들인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오일머니가 한국 증시에 대한 입질을 시작하는 단계로 판단된다"며 "자금운용 규모가 큰 중동계 펀드들이 본격 진입하면 증시에 큰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헤지펀드 비중은 급감

장기투자 외국인의 증가는 이들의 매매회전율 감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외국인의 올 매매회전율은 108~131%로 조사돼 헤지펀드 등의 단타가 극성이던 지난해 9~10월의 196~199%보다 50%포인트 이상 급감했다.

이와 함께 한국증시의 교란요인으로 꼽혀온 헤지펀드 등 단타 위주의 외국인 비중은 급감하고 있다. 헤지펀드들이 많은 케이맨제도 소재 투자회사와 단기 투자 성향이 강한 영국계 증권사 및 프랑스계 은행 등의 비중은 지난 4월 조사 때 39%였으나 이달엔 20%로 절반 가까이 축소됐다. 이는 증시의 변동성이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분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헤지펀드와 단기 투자하는 글로벌투자은행,프라임브로커 등의 주식매수액은 최근 두 달 동안 9000억원 정도에 그쳐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며 "이는 증시 안정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외국인의 매수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코스피 과열논란이 빚어지고 있지만 아직 상승장에 동참하지 못한 외국인 대기매수세가 많아 한국주식에 대한 수요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이머징마켓펀드의 한국 주식 보유비중이 12%로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지수의 한국비중 15%보다 여전히 낮은 상황인 데다,코스피지수가 단기 급등했지만 상장사들의 이익이 빠른 회복세를 보인 덕분에 주가수익비율(PER)이 아직 11배대로 아시아 다른 증시에 비해 높지 않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외국인의 자금 유입 규모는 주요 기업들의 2분기 실적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지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2분기 실적이 잘 나온다면 주가 상승이 정당화돼 외국인의 대규모 자금 유입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매수세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