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증시에서 외국인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투자여력이 부족한 기관이 주식을 팔기에 급급하고,시장상황에 따라 매수와 매도를 오락가락하는 개인과 달리 외국인은 꾸준하게 주식을 사들이며 증시 상승을 이끌고 있다.

올 들어 지난 4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의 순매수 규모는 5조7945억원에 달한다. 외국인은 2005년 3조원을 순매도한 데 이어 2006년 10조원,2007년 24조원,2008년 33조원 등 해가 갈수록 순매도 규모를 키우며 한국 증시를 외면했지만 올 들어선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보기술(IT) 자동차 등 글로벌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 대표기업들의 경쟁력이 확인됐고 경기지표도 바닥을 지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외국인이 '바이 코리아'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증시 수급을 주도하고 있는 외국인이 관심을 갖는 종목에 주목하는 전략이 필요할 때라고 조언한다. 3월 이후 반등장에서 중소형주의 성과가 상대적으로 좋았지만 코스피지수 1400선 안팎에서 증시가 재도약할 경우 외국인 매수세가 뒷받침되는 대형주의 전망이 밝다는 의견이다.


◆증시 향방 "외국인에 물어 봐"

올 들어 증시의 흐름은 외국인의 매매패턴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부터 4월 말까지 증시의 매수 주체와 일별 코스피지수 동향과의 상관계수를 조사한 결과 외국인,프로그램 차익거래,개인,기관 순으로 상관계수가 높게 나타났다. 상관계수는 두 변수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지를 분석한 것으로,1에 가까울수록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반대로 -1에 근접할수록 관련성이 없는 것을 뜻한다.

분석 결과 외국인의 상관계수는 0.45로 가장 높았고 차익거래는 0.08,개인은 -0.03,기관은 -0.33으로 집계됐다. 외국인의 상관계수가 가장 높다는 것은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수를 기록했을 때 코스피지수가 많이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과 기관은 상관계수가 마이너스로 나와 이들이 주식을 사는 날은 지수가 오히려 하락한 경우가 많았다.

김성봉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높아 외국인이 작년에 과도하게 줄인 한국 주식비중을 올해 다시 채워넣고 있다"며 "외국인은 살 때는 계속 사고 팔 때는 계속 파는 등 매매의 일관성을 유지해 지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경근 ABN암로증권 주식영업부 상무는 "한국 대표기업들의 실적이 당초 우려보다 양호한 데다 해외시장 점유율도 올라가고 있어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매수 대형주에 주목

올해 1월 순매수로 시작한 외국인은 2월에는 8600억원가량 순매도했지만 증시가 반등을 시작한 3월 1조2768억원어치 순매수한 데 이어 4월에는 4조2008억원으로 매수 강도를 더해가는 추세다.

특히 연초엔 KT&G KT 등 경기방어주를 주로 매입하다가 최근에는 IT 자동차 등 수출 관련 대형주와 은행 증권 기계 건설 등 경기민감주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인호 하나UBS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추가 상승을 예상한 일부 외국인들이 성장주와 경기민감주 위주로 종목을 바꾸고 있다"고 분석했다.

4월 한 달간 외국인은 현대차를 5100억원가량 순매수한 것을 비롯해 신한지주(3854억원) 포스코(3782억원) LG디스플레이(2211억원) 삼성물산(1899억원) 등을 집중 매입했다. 삼성증권 삼성화재 등 금융주,GS건설 현대건설 현대산업개발 대림산업 등 건설주들도 순매수 상위 30위권에 대거 포진했다.

4월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30종목 중 월간 주가상승률이 가장 높은 종목은 삼성엔지니어링으로 33.22%에 달했다. 신한지주(28.86%) 현대차(23.42%) 현대모비스(23.37%) 두산중공업(22.79%) 등도 코스피지수 월간 상승률(13.52%)을 크게 웃돌았다.

올 들어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서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서고 있지만 증시의 외국인 비중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유가증권시장 기준으로 2004년 4월 44.1%에 달했던 외국인 지분율은 작년 말 28.7%로 떨어졌고 지난 6일 현재 27%대에 머물고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추가로 한국 주식을 더 사들이는 데 큰 부담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증시 분석가들은 당분간 외국인이 수급을 주도할 가능성이 큰 만큼 외국인이 사들이는 대형주에 집중할 것을 권했다. 이재만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과거 외환위기와 IT버블 붕괴 이후 증시 회복과정에서 외국인 순매수가 늘어난 시기에는 대형주가 중소형주보다 강세를 보이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며 "대형주가 중소형주에 비해 이익개선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형주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류용석 현대증권 연구원은 "경기가 바닥을 지나고 있다는 각종 지표들이 나오며 시장이 단순 유동성 장세에서 펀더멘털(내재가치) 개선까지 기대할 수 있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며 "업종대표주 위주로 외국인의 매수세는 더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