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의 소리를 내는 재즈 보컬리스트 윤희정. 그저 재즈를 잘 부르는 싱어는 싫다는 그녀의 바램대로 그녀의 목소리는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재즈’하면 갖게 되는 우울한 블루빛 느낌의 목소리가 아닌 그녀의 통쾌한 웃음과 편안함이 재즈를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우리나라는 재즈가 대중화 되어 있지 않아,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 보아도 많이 뒤쳐져 있고 그런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부를 수 있는 재즈를 노래하려고 말했다”던 윤희정의 노력이 결실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일까. 우리는 그녀를 이제는 재즈의 전도사라고 부른다.

재즈는 바로 윤희정 그녀 인생 자체와 닮아 있다. ‘불확실한 기원’이란 뜻을 가진 어원을 갖는 재즈는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하고 도덕적인 삶에서 벗어나 인간의 슬픔과 신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가스펠 정신이 결합된 비서구적인 음악이었다.

윤희정은 40년 노래 인생 중 가장 젊었던 학생 시절, 가스펠을 부르고 선교활동을 했다. 그렇게 흑인의 영가적인 요소가 가득 배어 있던 블루스가 그녀의 모태 음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재즈가 갖는 틀 안의 자유로움 속에 아리랑의 정신과 판소리를 접목시키려는 음악적 실험을 시도해 한국적 정서가 배어 있는 재즈를 만들어 가고 있다.

카렐 보에리 트리오와의 로맨틱 재즈 콘서트
국내 재즈계의 대모로 불리는 윤희정은 26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프라디아에서 유로피안 재즈트리오의 초대 피아니스트인 카렐 보에리와 호흡을 맞춘 재즈 콘서트가 열린다. 로맨틱 재즈의 대명사로 불리는 카렐 보에리 트리오의 첫 내한 공연 디너쇼에 그녀가 같이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에 기마타 마코토라는 유명한 프로듀서가 있어요. 30년 동안 재즈 음반만 고집했고, 그 분을 스쳐간 뮤지션만 500명이 넘죠. 그 분이 저와 카렐 보에리의 콘서트를 추진하신 거죠.”

“이번 공연을 기회로 기마타 선생님과 일본 음악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요. 일본 시장에 한국적인 재즈를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크죠. 특히나 일본은 제 스승인 이판근 선생님의 고향이나 다름 없는 곳이라서 그런지, 더욱 의욕이 나요.”


그녀의 영원한 스승이며 재즈 인생을 만들어준 재즈계의 대부 ‘이판근’

“10년 가까이 가스펠을 부르면서 선교 활동을 했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허전했어요. 그때 이판근 선생님을 만나게 됐고, 제 남은 인생의 공허함을 채워 줄 재즈를 만나게 된 거죠.”

90년 초반, 한 음반제작자가 그녀를 재즈 이론가이자 작곡가인 이판근에게 소개시켜줬다. 정원영, 김광민, 이정식, 강태환 등 수많은 뮤지션이 이판근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윤희정도 이판근에게 재즈를 배우기 위해 기자촌을 찾아 갔다. 하지만 이판근은 “넌 노래를 잘하니 배고픈 재즈를 하지 말라.”며 그녀를 받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오기였는지 열정이었는지 매일 기자촌을 찾아 갔고 결국은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6년 만에 처음으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어요. 그 때 얼마나 행복하던지.. 선생님을 만나서 음악에 대한 속도를 배우고 재즈의 방향을 보게 되었어요. 재즈가 엔도르핀을 주는 스릴이라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서 알게 된 거죠. 선생님은 내 인생의 총지휘자세요.”

‘윤희정과 프렌즈’의 14년 발자취
‘윤희정’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윤희정과 프렌즈 공연이다. 윤희정과 프렌즈는 올해로 벌써 14년째 180회의 횟수를 넘긴 베테랑공연이 되었다. 윤희정 재즈 인생 20년 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녀의 공연에 출연한 프렌즈는 기업CEO 120명과 유명인 120명을 포함해 벌써 240명이 되었다. 그녀의 인맥이 놀랍다.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직접 전화했어요. 114에 전화해서 번호 알아 내서 나는 윤희정이고 그 공연에 초대하고 싶다고 얘기 했죠. 의외로 통하던 걸요(웃음). 반대로 저를 찾아 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김미화, 옥주현, 박경림, 김효진씨가 그랬죠.”

막무가내로 재즈공연에 초청하고 또 그 제안에 응해준 사람들이 벌써 240명이 되어간다. 재즈라는 난해한 장르의 음악을 가수가 아닌 일반인에게 가르쳐서 무대에 세우는 그녀의 재주가 놀랍다. 이를테면 윤희정은 ‘재즈의 맞춤형 선생’인지도 모르겠다. 5월 27일에 열리는 91번째 공연에는 미스코리아 이하늬와 블리자드 북아시아 대표인 한정원씨가 출연 준비 중이다.

“누구라도 재즈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래를 잘하는 스킬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재즈에 대한 마음을 가르치는 거에요. 자기 자신만의 유일한 재즈를 하는 거죠.”

재즈라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던 한국에 재즈의 씨를 뿌린 윤희정과 프렌즈는 이미 하나의 재즈 브랜드가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14년 동안 공연을 하는 사람이 전 세계를 통틀어 얼마나 될까.


이제는 미술과 음악을 하나로 ‘Art & Jazz’
윤희정은 올해 또 다른 공연을 기획해 진행 중이다. 일년에 4번 시즌 별로 공연하며, 오는 6월에는 갤러리 박영에서 설치미술로 유명한 이진준 작가와 공연 준비 중이다. 평소 친분이 있던 안종만 CEO와 이야기 하던 중 나왔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늘 새로운 창작 공연을 대중들에게 선사하고 싶어요. 이번엔 재즈와 미술을 합쳐 테마가 있는 무대를 생각했죠. 6시간 이상 잠을 자 본적이 없어요. 잠을 안 자서 살이 찌는 건가 봐요.(웃음)”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는 그녀는 전시회를 많이 다니려고 노력하고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고 한다. 이를테면 테마 공연도 전시회 구상의 산물인 것이다.

내 딸은 나의 최고의 친구
‘윤희정’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그녀의 딸 김수연이다. 버블시스터즈 출신인 그녀는 엄마인 윤희정씨만큼 뛰어난 가창력으로 유명하다. 김수연은 싱어송라이터로 벌써 30여 곡을 넘게 발표하였고, 한예슬, 한지혜의 보컬트레이닝도 맡고 있다. 음악 말고도 ‘뚱스 닷컴’이라는, 뚱뚱한 여자들에게 어울리는 옷들을 파는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단다. 엄마에게 물려 받은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끼를 유감없이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음악이 최고의 소통이라는 것을 내 딸을 통해서 알아요. 같이 음악을 하다 보니 세대 차이를 잘 못 느껴요. 내 공연에 나보다 수연이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더 많을 때도 있죠. 바느질을 좋아하는 점까지 닮은 내 딸을 보고 많은 위안을 받아요.”

직접 만든 모자를 쓰고 비즈 장식품을 하고 무대에 서는 윤희정의 손재주까지 닮은 김수연은 윤희정에게 최고의 딸이며, 음악적 시너지 효과를 주는 좋은 친구이다. 엄마가 ‘윤희정’이라서 좋다는 딸의 말은 그녀에게 최고의 칭찬이지 않을까.


나는 윤희정이고 싶다.
어렸을 땐 빌리 할리데이나 사라본 같은 재즈 보컬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이제 자기 자신인 윤희정이 되고 싶어 한다. 재즈를 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자신만의 것이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윤희정은 나이에 맞는 재즈를 들을 것을 권한다. 20대는 20대의 음악을 들어야 공감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에디슨은 천 번의 실패를 천 번의 연습이라고 생각했어요. 재즈는 평생을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씩 알아가면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판근 선생님의 말처럼 음악은 끝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것을 만드는 거에요.”

윤희정은 드레스를 입고 꽹과리를 든다. 우리나라의 자진 모리 장단을 결합해 셔플 모리를 만들었다. 그녀는 한국적인 음악을 베이스에 깔아 그렇게 자신만의 재즈를 만든다.

“일본의 블루노트 공연을 보면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월드 투어 퍼포먼스를 해요. 빅 밴드는 20~30팀 정도나 되요. 우리나라는 아직 2~3팀 밖에 안되기 때문에 많이 부러워요.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재즈를 부르고, 재즈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거에요.”

누구나 태어나면서 짊어지는 삶의 고통은 사랑만이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윤희정은 재즈를 만나고 사랑하면서 행복해 한다. 예술가로서 짊어 지는 고독을 다른 세상을 통해 풀어가는 그녀가 보여 줄 음악 세계가 자못 기대 된다.

한경닷컴 bnt뉴스 서예림 기자/ 사진 이환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