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서로 구별되는 것'이라는 말처럼 기억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기억은 주관적이고 불완전하기에,이를 삶의 나침반으로 삼아 나아가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 새 입구도 출구도 없는 미로 속이다. 이미 미로 속 길을 한 번 거쳤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헤매고 또 헤매는 인간의 삶은 '반복의 연속'이다.

'경마장 가는 길'의 작가 하일지씨(54)가 7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소설 《우주피스 공화국》(민음사)은 과거의 기억을 따라온 주인공 '할'의 고향찾기 여정을 시작도 끝도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펼쳐보인다. 우주피스 공화국 태생인 할은 어린 시절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외국으로 떠났다가 고국이 주변국에 점령되는 통에 오랫동안 귀국하지 못한다. 그러다 조국이 독립했다는 소식을 듣고,아버지의 유골을 고향에 묻어주기 위해 돌아온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택시를 타면 우주피스 공화국이 지척이라고 알고 있기에 그는 일단 리투아니아에 입국한다. 그런데 우주피스 공화국으로 가는 길을 시원하게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간혹 우주피스어를 구사하거나 우주피스 공화국의 존재를 아는 듯한 사람들도 있지만 좀처럼 쓸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만우절을 독립기념일로 정한 '농담 공화국'"이라고 비웃어댄다.

할의 고난은 바로 조국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가 불분명해지면서 시작된다. 리투아니아어로 강 건너편을 뜻하는 '우주피스'는 '피안'과 상통한다. 문학평론가 이영준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동일한 공간이 아니라 동일한 시간으로,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듯,할의 고향은 과거의 시간에 존재한다.

우주피스 공화국이 기억에서만 실재한다는 점은 기억의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이는 할과 두 명의 요르기타의 관계에서 형상화된다. 고향을 찾던 중 할은 젊고 아름다운 여인 요르기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요르기타의 죽은 남편이 남긴 유품은 할의 소지품과 동일하다. 게다가 할처럼 요르기타의 전 남편도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자살했다. 게다가 우주피스 공화국을 알고 있다는 노파 요르기타는 젊은 요르기타와 유사한 기억과 물건,심지어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다. 정황상 두 요르기타의 죽은 남편은 할과 동일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할은 두 요르기타의 전 남편과 자신의 접점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한다. 두 요르기타도 할이 자신들의 죽은 남편을 빼닮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들은 같은 하늘 아래 있지만 다른 시간과 다른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같으면서 다른 인물이다. 그래서 하씨는 할이 젊은 요르기타와 노파 요르기타를 만나는 장면을 복사한듯 비슷하게 묘사한다.

두 요르기타의 전 남편도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아나섰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이 사실은 할의 삶이 반복됐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기시감(데자뷰)은 느끼지만 연관성을 찾아내지 못한 할은 또다시 예고된 순환고리에 갇혀버린다. 이는 찾을 수 없는 것을 갈구하며 삶을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인간의 비극과 상통한다.

하씨는 소설에서 시간의 흐름을 비틀고 이어간다. 그런데 소설 안과 소설 밖 공간도 묘하게 연결돼 있다. '우주피스(uzupis)'라는 지역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게다가 실제로 하씨는 '우주피스 공화국 주한 대사' 직책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