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만남'이라는 말은 매우 진부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늘 설레는 단어다. 이 단어는 지난날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직장 초년생 때 선배 소개를 통해 카페에서 지금의 아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는데,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머리 속은 '첫 만남'에 대한 설렘으로 무척 떨리던 순간이었다. 잠시 후 카페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나타났을 때 그 설레던 기다림은 미소로…그리고 6개월 후 바로 결혼으로 이어졌다.

봄 여름 가을,그리고 겨울,패션회사는 계절마다 새로운 제품을 매장에 내놓으며 '첫 만남'의 순간을 기다린다. 그 만남은 정성스럽고 긴 준비 과정으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한다. 1년 전부터 내년에 나올 제품을 위해 해외 및 국내 컬렉션과 전시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전년 제품에 대한 판매 동향,물량 정보 등을 분석한다. 이후 전체 기획 방향을 설정하는데,이때 시장 움직임과 고객 니즈의 변화를 기반으로 시즌 컨셉트와 물량을 정한다. 그리고 시장의 규모를 판단한 후 스케치를 통한 프로토 타입의 제품을 만들어 바이어 및 내부 품평회를 거쳐 출시될 제품을 확정한다. 이후 생산된 제품이 물류창고에 모였다가 매장으로 출고되면 드디어 소비자와 만나는 것이다.

의류매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작은 면 티셔츠 하나도 구매,MD(Merchandiser),디자인,패턴,생산,물류,디스플레이,영업 등 수십명의 고민과 노고가 들어가 있는 '작품'인 것이다.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제품은 고객들과 만나기 위해 수많은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그 기간에 비해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진열대에서 '주인'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런 '작품'들이 매장에 진열돼 고객을 처음 만나는 그 설레는 순간을 위해 '패션인'들은 1년을 정말 바쁘게 지내지만,선택되는 그 순간보다 오히려 과정을 더 소중히 여기는지 모른다.

필자의 경우 완성된 제품을 '파는 일'인 종합상사 업무를 하다가 제품을 '만들어 파는 일'로 직업을 전환하면서 무엇을 정성스럽게 만든다는 것,그리고 그 정성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누군가가 느낄 행복함을 생각하며 전보다 두 배의 기쁨을 느낀다. 옷 하나를 만드는 것에서도 큰 행복을 느끼듯 이 세상 모든 '첫 만남'들을 만드는 기획자들이 그런 설렘 속에서 정성스레 만남을 준비하면 어떨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결혼 후 10년 만에 장만한 새 아파트,어렵게 결심해 구입한 자동차,약간의 도전정신으로 먹어보는 신메뉴 등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첫 제품들을 비롯해 과천과 여의도에서 주로 생산되는 경제 정책과 법안들까지,첫 만남을 위한 기획자들의 정성과 고민이 있다면 고객의 지속적인 '설렘'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루하루가 '설레는 첫 만남'으로 넘쳐나는 세상을 그려보며 몇 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