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의 유전 뚫어라"…7조들여 고도화설비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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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C유를 경질유로…GS칼텍스 등 설비공사 한창
휘발유·경유 정제마진 갈수록 악화…생존위해 사활
휘발유·경유 정제마진 갈수록 악화…생존위해 사활
전남 여수에 있는 GS칼텍스 정유공장.바다를 메워 조성한 61만5000㎡(18만6000평)의 제2 공장 부지에는 레미콘과 철골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쉴새 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현장 근로자들은 광양만 해풍으로 발생하는 흙먼지도 마다하지 않은 채 땅속에 박힌 철골 기둥과 파이프 라인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GS칼텍스가 총 3조원을 투자해 짓는 제3 중질유분해시설(HOU) 건설 현장(사진)이다. 작년 10월 착공해 현재 25%의 건설 공정률을 기록하고 있다. 내년 8월 준공을 목표로 한 이 프로젝트는 국내 석유화학업계 단일 투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HOU는 1차 원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저가 중질유인 벙커C유를 휘발유와 등 · 경유 등 고부가가치 경질유로 만드는 설비다. 업계에선 '고도화 설비'로 부른다.
축구장 80여개가 들어가는 현장 부지에는 하루 평균 4000여명,연간 330만명의 근로자가 동원된다. 공사에 들어가는 콘크리트는 총 30만㎥로 20층 높이의 33평형 아파트 40개동을 지을 수 있는 양이다. 철골 규모는 10t 트럭 5500대 분량인 5만5000t,공장 전체를 휘감는 배관 길이는 서울과 부산을 2.5회 왕복할 수 있는 2000㎞에 달한다. 김명기 제3HOU건설 그룹장은 "이번 공사는 2007년 완공한 제2 고도화 설비보다 투자 규모가 두 배 크다"고 설명했다.
국내 정유업체들이 불황 속에서 오히려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정유업체의 경쟁력 지표로 자리 잡은 고도화 설비 증설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GS칼텍스,SK에너지,현대오일뱅크 등 3개 회사가 2011년까지 고도화 설비에 투입하는 투자비만 7조원에 달한다. 1990년대에 일찌감치 대규모 고도화 설비 투자를 마무리지은 에쓰오일도 장기적으로 증설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유업체들이 고도화 설비를 앞다퉈 증설하고 있는 것은 사업 경제성 때문이다. 현재 정유사들이 두바이유 등 해외에서 원유를 들여와 일반적인 정제과정을 통해 생산하는 휘발유와 경유 등은 사업성이 '0(제로)'에 가깝다. 작년 말 이후 원유가격과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휘발유 · 경유 제품가격 차이를 나타내는 정제마진이 계속 하락하며 마이너스로 전환되는 역마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정제사업으로는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만 본다는 얘기다.
정유사들의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이 고도화 설비다. 고도화 설비는 원유 정제과정에서 40%가량 나오는 값싼 벙커C유를 열분해 · 탈황 작업을 통해 휘발유와 경유로 바꿔준다. 국제시장에서 휘발유보다 배럴당 20달러가량 낮은 벙커C유가 황성분이 낮은 최고급 휘발유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고도화 설비가 '땅 위의 유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박용찬 GS칼텍스 제3HOU건설팀장은 "중동 지역의 잇따른 정유공장 증설로 단순 정제사업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고도화 설비 투자는 정유회사의 10년 뒤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GS칼텍스는 제3 HOU가 상업가동을 시작하는 내년 11월 이후 고도화 비율(전체 원유정제 처리능력 대비 고도화 설비 생산 비중)이 현재의 두 배에 가까운 39.1%로 높아져 에쓰오일(25.5%)을 제치고 업계 1위가 될 전망이다. SK에너지도 인천콤플렉스에 1조5000억원을 들여 2011년 6월까지 하루 4만배럴 생산규모의 고도화 설비를 증설할 계획이다.
여수=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