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 눈에 자식은 언제나 어린아이다. 하는 행동마다 불안하고 미덥지 못하다. 부하직원을 보는 상사들도 비슷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툭하면 "내가 너희만 할 때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되뇌인다. "요즘 얘들은 영…"으로 시작하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김 과장,이 대리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런 말을 들어왔다. 그럴 듯한 말도 있지만 대부분은 '꼰대'들의 잔소리로 들린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상책이다. 오히려 "내가 너희만 할 때는…"이란 레퍼토리를 시작하는 상사를 보며 마음 속에 다짐하곤 한다. '내가 상사가 되면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말이다.

#1.가끔은 후배를 패주고 싶다

상사들이 부하직원을 보면서 느끼는 격세지감은 크다. 당혹스러운 경우가 많다. 이들이 느끼는 '난 안그랬는데…'는 무엇일까.

▼벤처기업 P사 B상무=요즘 후배들은 아예 '3무(無)'입니다. 위 · 아래 구분이 없는 것은 기본이죠.조직생활에서 가끔 필요한 자기희생도,상사 부하 간에 나눴던 정(情)도 없어요. 후배들과 스킨십이 필요할 것 같아 술 한잔 하자고 하면 "요즘 누가 술먹어요"하며 눈을 동그랗게 떠요. 어쩌다 술 한잔 먹을라 치면 시계를 흘끔흘끔 봅니다. 맘이 편치 않아 1~2시간 안에 끝내곤 하죠.윗사람 말씀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던 우리 졸병 땐 상상도 못하던 일이죠.

▼D은행 C부장=옛날식의 '상사'를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는 위 · 아래가 아니라 '분업' 구조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분위기는 좋죠.하지만 심하다 싶을 때가 많아요. 뭐 돌아서서 욕하는 것은 그렇다고 칩시다. 상사 앞에서조차 어려운 척도 안하는 직원들이 상당합니다. 오히려 조그만 틈만 보여도 기어오르려고 하니….

▼대기업 S사 P부장=직장 동료들끼리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도 좋지만 지킬 것은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틀린 점을 지적하면 별것 아닌 것 같고 트집 잡는다고 뒤에서 불평이나 하고.심하게 야단이라도 치면 '그만두겠다'고 윽박지릅니다. 생각 같아선 한대 패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럴 수도 없습니다. '아 옛날이여'를 되뇌이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습니다.

▼중소기업 W사 S이사=워크숍을 명분으로 한번 뭉치자고 해도 한두 사람은 꼭 빠집니다. 데이트 약속이 있다나요. 개인생활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이니 하루 정도 희생하겠다는 마음이 있을 리 없죠.공휴일에 막내 직원 중 누군가 한 명이 당직을 서야 한다고 하면 서로 눈치보며 미루는 게 자연스러워 보일 지경입니다. 우리 때는 연애도 미루고 당직을 섰는데 말이죠."열외없이 무조건 다 나와"하며 호통치던 옛 상사들이 생각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2.억척스러움까지 사라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업무에 임하는 태도마저 달라지는 것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상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S이사=제가 과장 때였죠.회사가 상당한 벌금을 부과받았습니다. 우리로서는 상당히 억울했죠.이를 해명하려고 했으나 담당 공무원은 만나주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집 앞에서 며칠 밤을 새우고는 그를 만났습니다. 덕분에 벌금이 줄었습니다. 얼마 전 비슷한 일이 생겨서 담당 과장에게 해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제 경험을 얘기해주면서 말이죠.하루 뒤 이 친구가 "담당 공무원이 만나지 않겠답니다"고 보고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다는 거죠.극단적인 예이지만 요즘 후배들은 악바리 근성이나 책임감이 적어 보입니다.

▼C부장=작년 말 제가 맡은 팀에 배치된 3년차 대리를 지켜보고 있으면 그냥 한숨만 납니다. 당시는 다른 팀에 비해 성과가 뒤져 전전긍긍할 때였죠.모두 머리를 싸매고 밤을 새워가며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도무지 승부욕이 없더라고요. 시키는 일은 열심히 하는데 '반드시 이기겠다'는 태도가 안보이더군요. 퇴근시간만 되면 집안에 일은 왜 그리 많이 생기는지….

▼P부장=그래도 부러운 측면도 많아요. 후배들은 가정생활에 충실하려 애쓰잖아요. 젊었을 적 "내가 과부냐"고 하소연하던 집사람을 떠올리면 후배들이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거나,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거나,네트워크나 경력관리 등을 해나가는 후배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더라고요. 우리 땐 그러지 못했거든요.

#3.부장이 되면 난 그러지 않을 거다

상사들만 부하를 바라보며 한숨 쉬는 게 아니다. 똥고집과 과거의 추억으로 무장한 상사들을 보는 부하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이런 상사를 바라보며 "내가 부장이 된다면…"이라며 새로운 상사 모습을 그리고 있다.

▼대기업 L사 I대리=쓸데없는 회의와 술자리 회식을 우선 없애겠어요. 한참 일하고 있는데 회의한다고 하면 힘이 쭉 빠집니다. 뾰족한 결론도 없이 훈시만 들으며 시간만 축내는 회의만 하니 얼마나 시간낭비입니까. 회식도 그래요. 꼭 술이 있어야 속깊은 얘기가 나온다는 편견은 버릴 때가 됐습니다. '부어라,마셔라' 식으로 회식할 돈이 있으면 차라리 부하직원 와이프나 자녀들 선물이나 사서 들려 보낼 겁니다.

▼D은행 H과장=제가 아는 부장들은 모두 잘난 사람들입니다. 모든 업적이 자신의 손을 거쳐서 나온다고 생각하죠.기획 단계에서 실행 단계까지 말단 과장들이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은 모두 자기 차지죠.우리는 칭찬은커녕 질책을 받지 않으면 다행이죠.제가 부장이 되면 업무의 공을 아랫사람에게 돌릴 겁니다. 그래야 후배들이 부장을 믿고 따를 테니까요.

▼중소기업 J사 P과장=저 같으면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부터 버리겠습니다. 상사들은 부하들을 수시로 깨야만 영(令)이 선다는 이상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별것 아닌 일 갖고도 버럭 화를 내는 상사도 많고요. 지금이 폼이나 잡고 권위를 세우면서 일할 때입니까. 후배들이 상사를 큰형님처럼 생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죠.시대가 변하고 부하직원들의 생각도 바뀐 만큼 이제 상사들도 변해야 합니다. 과거의 추억에만 안주했다간 회사도 과거 수준에서 정체되고 말 겁니다.

이정호/이관우/정인설/이상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