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환급이 한국과 유럽연합(EU)이 1년11개월간 벌여온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딜브레이커(협상결렬요인)가 되고 말았다. 2일 런던에서 열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캐서린 애슈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 간의 최종 협상에서 EU 측은 환급을 허용하자는 우리 측 주장을 끝내 외면했다. 인구 5억명에 국내총생산(GDP)이 16조9000억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시장을 열기 위한 노력이 일단 좌절됐지만 향후 협상에서 어떤 형태로든 타결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EU,관세환급 폐지 요구 고수

이날 회담에서 EU는 한국이 관세환급제도를 철폐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FTA 특혜관세에 더해 관세환급까지 해주면 이중 혜택이 되는데다 수출용 원자재를 한국에 판매한 제3국에 이익이 전가된다며 금지해야 한다는 게 EU의 논리다. 관세환급을 없애야만 역내(한국과 EU)의 원재료와 부품 사용을 촉진할 수 있다는 주장도 되풀이했다.

정부 관계자는 "EU는 관세환급을 그대로 두면 FTA 체결로 양측 간 교역이 활성화되는 혜택이 제3국으로 흘러나가는 부작용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EU는 이미 체결한 칠레,멕시코 등과의 FTA에서도 관세환급을 양보한 적이 없었다.

이 같은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EU 역내의 정치적인 상황도 타결을 어렵게 한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EU 의장국인 체코 내각이 최근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헝가리는 물론 2007년 신규 회원국이 된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구권 국가들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개방을 확대하는데 반대해온 것도 이번 회담에 악재로 작용했다.

김 본부장도 영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가진 대책회의에서 이 같은 요인들을 거론하며 "회담이 결렬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타협할 대상 아니다"

관세환급에 대한 한국의 입장은 확고하다. 한국은 이날 회담에서도 원자재를 수입해 수출하는 제조업 중심 국가에 관세환급제도를 철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FTA를 체결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반박했다. 관세환급은 일단 징수한 관세를 수출할 경우 다시 돌려주는 것인 만큼 WTO 보조금 협정에서도 금지보조금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는 게 한국 측의 논리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EU시장에서 우리의 경쟁 상대인 일본과 중국이 관세환급제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시장 개방의 대가로 관세환급 금지를 받아준다면 FTA로 얻게 되는 관세 철폐 혜택이 심각하게 훼손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EU집행위 내부에서도 부처에 따라 관세환급에 대한 온도 차이가 존재해 왔다. 애슈턴 집행위원이 총괄하는 통상총국은 한국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관세총국이나 산업총국에서는 '원칙'의 문제라며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원산지 기준은 의견 절충

관세환급 만큼 입장차가 첨예하지 않았던 원산지 기준에 대해서는 타협이 이뤄졌다. 양측은 기계 전기전자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산업에서 역외 부품 및 재료 사용 비율이 높은 만큼 역외산 부품 사용 비율을 품목별로 45~50% 사이에서 정하는데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을 이뤘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품목에 따라 다르지만 EU는 역외산 부품 비율을 최소화하자는 입장"이라며 "이 비율이 1~2%포인트라도 확대되면 한국 기업들의 부품 조달 비용이 높아지는 만큼 우리 입장을 관철시키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양측은 내부 지침을 받아 다시 협상에 나설 방침이나 시기는 결정되지 않았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관세환급이란

상품을 수출할 목적으로 원재료 및 중간재를 수입했을 경우 부과했던 관세를 다시 돌려주는 것으로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협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제도다. 한국은 EU보다 원재료를 가공한 수출비중이 높아 관세환급이 절실하다. 지난해 1만7000여개 기업에 2조8162억원의 관세를 환급했다. 전체 관세징수액의 21%에 달하는 액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