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無所不爲)'와 유소불위(有所不爲).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글자 한 자 바뀌었을 뿐인데 내포된 의미는 전혀 다르다. 둘 다 세도가의 생각과 행동에 연관된 말이지만 무소불위는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유소불위는 '하지 않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무소불위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에 진시황 즉위 후 상국(相國) 자리에 오른 여불위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고 적은 데서 비롯됐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토록 막강했던 여불위의 힘을 뺏고 내쫓아 자살하게 만든 건 바로 진시황이었다.

고대 로마에선 개선장군의 시가행진 마차에 노예를 태운 다음 같은 말을 계속 되뇌이게 했다고 한다. "모든 영광은 지나간다. 당신도 한낱 인간임을 기억하라." 승리와 힘에 도취되지 말라는 고언인 셈이다. 권력의 마성(魔性)은 그러나 늘 사람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정권만 바뀌면 이전 정부에서 힘깨나 썼다는 사람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는 사태가 반복될 리 만무한 까닭이다. 참여정부 시절 실세라던 사람들이 비리 혐의로 구속됨으로써 국민들의 탄식을 자아내는 가운데 행여 질세라 청와대 행정관이 부적절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터졌다.

맹자는 일찍이 "사람은 하지 않는 게 있어야 큰 일을 할 수 있다(人有不爲也而後 可以有爲)고 했거니와 정조 역시 관리의 첫째 덕목으로 유소불위를 강조했다. '사대부는 삼가는 일이 있어야 국사를 처리할 수 있다(士大夫有有所不爲 然後方可以做國事)'는 게 그것이다.

뭐든 가리지 않고 덤비는,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사람은 나랏일을 맡을 수 없다는 얘기다. 정치인과 관리의 권한은 아무 일에나 마구 휘둘러도 되는 무소불위의 힘으로서가 아니라 보통사람이면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참고 절제해야 한다는 유소불위의 대가로 부여된 것이다.

있는 힘이라고 함부로 쓰다 패가망신하는 걸 뻔히 보면서도 같은 짓을 하는 이유는 알 길이 없다. 권력이 무한하다 믿는지,유한한 줄 아니 있을 때 한껏 행사하려는 건지,안들키면 된다 싶은지.그러나 달도 차면 기울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 '리어왕'에서 코딜리어가 말하지 않던가. "시간은 흉계와 허물을 드러내 창피 주며 비웃지요.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