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휘발유 등 석유류 제품의 공급가격 공개를 추진,정부와 정유업체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공급자 간 경쟁을 촉진해 기름 값 인하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반면,정유업계는 기업의 영업비밀을 공개하라는 요구나 다름없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23일 지식경제부와 정유업계에 따르면 정유사별 기름 판매가격 공개를 규정한 '석유 및 석유 대체연료 사업법' 개정안이 지난 1월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정부는 구체적 시행방안을 담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어 최근 입법예고했다. 새 규정은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5월 중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각 정유회사는 일선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 등 제품의 평균가격을 주간 단위로 공개하도록 의무화된다. 지금은 지식경제부가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4개 정유사의 평균 공급가격을 주간 단위로 산출해 고시하고 있지만,앞으론 개별 회사의 공급가격이 공개되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카드'를 꺼낸 것은 정유사별 경쟁을 유발시켜 최근 들어 고공행진 중인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을 끌어내리기 위해서다.

지식경제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최근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고 있는 데 따른 소비자들의 불만을 정유사 간 경쟁을 유도해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며 "개별 주유소 단위가 아니라 공급가격 평균치를 공개토록 하는 만큼 무리한 조치라고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는 '기업의 생리를 모르는 탁상행정에서 나올 법한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제품원가에 해당하는 공급가는 기업 영업활동의 기본이 된다"며 "주유소별 평균가를 공개할 경우 평균가 이상으로 공급받은 주유소들의 불만은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반문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각 주유소의 거래 규모,신용도,외상거래 유무 등에 따라 공급가격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 개별 회사마다 전국 평균가격을 공개할 경우 높은 가격에 석유제품을 공급받는 주유소들로부터 이의 제기가 잇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유사들이 "가격 공개는 영업비밀 침해"라며 반발하는 이유다.

박희천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류 제품이 비싸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는 것은 ℓ당 630~860원까지 부과되는 세금 때문"이라며 "ℓ당 마진 20원 남짓으로 영업이익률 2~3%에 불과한 정유업체의 공급가를 공개해봤자 가격인하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주유소 공급가 공개를 강행할 경우 오히려 과점체제인 정유업계의 불공정거래를 유도할 여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손성태/이정호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