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국채 최소화.'

1년 전 정권이 교체되고 여당과 제1야당이 서로 자리를 바꿔 앉았지만 예산을 심의할 때가 되면 어김없이 야당이 주장하는 원칙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9월 처리된 1차 추경안과 연말에 있었던 올해 예산안 처리에 이어 이번에 제출되는 '슈퍼 추경안' 심사의 원칙으로 적자국채 최소화를 내걸었다.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였다. 금융회사 구조조정을 위해 167조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조성하던 때 한나라당은 재정 건전성 문제를 들어 규모 축소를 주장했다.

2006년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아예 추경 편성을 통한 적자국채 발행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안(국가재정법)을 만들기도 했다.

문제는 이처럼 적자국채 최소화를 요구하는 야당의 '전통'이 실제로 국가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기보다는 정치적 수사와 정권 발목잡기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채 최소화를 요구하면서도 자신들의 '주종목'이라는 복지분야를 중심으로 13조8000억원의 추경 예산을 요구했다. 생계급여 지원확대,식료품비 지원 등 위기가 지나간 후에도 혜택을 줄이기는 힘들어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는 항목 일색이다. 비정규직법 개정 반대를 전제로 요구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원 금액은 올해는 6000억원,내년에는 2조원의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시절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였다. 재정적자가 심하다고 정부를 공격하면서 세수를 줄여야 한다는 모순적인 주장을 했다. 최근에는 자신들이 주도해 만든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추경 요건을 완화하는 자기 모순을 보였다. '남이 하면 재정 건전성 악화,내가 하면 꼭 필요한 예산'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행정부의 방만한 예산집행을 견제하는 것만큼 당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에 지출을 늘릴 것을 요구하면서 빚어지는 야당의 딜레마"라며 "당내에서도 적자국채 최소화 요구는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인지 올해 예산안 심의 때 국채 규모를 10조원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구체적인 목표치를 내놨던 민주당 의원들은 '민주당 입장에서 이번 추경을 통해 감내할 수 있는 국채 규모가 얼마나 되나'는 기자들의 질문에 끝까지 침묵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