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이 26일부터 2000달러짜리 고가 노트북PC '아다모'(사진)를 판매합니다. 이미 제품을 선보였고 일부 사양과 가격도 공개했습니다. 두께가 0.65인치(1.65㎝)에 불과하고 화면이 13.4인치(34.0㎝)나 되는 '울트라슬림 와이드스크린 노트북'입니다. 특히 두께가 '노트북으로는 가장 얇다'고 델은 주장합니다. 슬림 노트북의 대명사인 애플 '맥북에어'가 두꺼운 쪽이 0.76인치니까 0.11인치 얇죠.

아시다시피 세계는 지금 불황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PC 시장도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노트북도 값싼 넷북만 잘 나갑니다. 이런 판국에 델은 럭셔리 노트북을 내놓습니다. 아다모는 2000달러짜리와 2700달러짜리가 있습니다. 100달러 안팎의 넷북이 판치는 지금 2000달러면 고가 중에서도 고가에 속합니다. 아다모 살 돈이면 넷북을 20대나 살 수 있겠죠.

델은 왜 추세를 거슬러 역주행하는 걸까요? 혹시 '델의 봉투 굴욕'을 아십니까? 지난해 초 애플이 '맥월드'에서 맥북에어를 내놓은 것은 아시겠죠.애플은 이 신제품이 얇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노란 서류봉투에서 맥북에어를 꺼내는 TV광고를 내보냈습니다. 이 광고가 나온 직후 인터넷에서는 패러디 동영상이 나돌았습니다. 모든 시추에이션은 맥북에어 광고와 똑같습니다.

단지 봉투에서 델의 데스크톱이 나오는 게 다릅니다. 델도 저렇게 얇은 PC를 만드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그런데 PC 본체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모니터도 나오고 키보드도 나오고… 별 게 다 나옵니다. 심지어 통닭 모형도 나옵니다. 이 대목에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봉투'란 자막이 뜹니다. 그러니까 델 PC가 얇기 때문이 아니라 '위대한 봉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얘기죠.

왜 하필 델일까요? '델=투박하다'는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델은 PC에서 각종 '거품'을 제거해 괜찮은 제품을 싸게 파는 회사로 유명합니다. 문제는 투박하다는 이미지입니다. 이 이미지가 굳어지면 아무리 멋진 제품을 내놓아도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겠죠.지난해 델이 스마트폰을 내놓을 것이란 소문이 나돌자 한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 같으면 델 스마트폰을 사겠느냐.'

델이 아다모를 내놓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싸구려' 이미지를 바꾸자는 것이죠.우리도 맥북에어보다 얇은 노트북을 만들 수 있고 애플보다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맥북에어는 가격이 1800달러 이상입니다. 그러니까 아다모가 200달러나 비쌉니다. 델은 '럭셔리 소비자를 위한 럭셔리 디자인'을 표방합니다. '맥북에어 킬러'란 말을 듣고 싶은가 봅니다.

델은 럭셔리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작년 말 패션 · 럭셔리 웹사이트 '업타운'에 아다모 티저 광고를 싣고 '맥북에어 라이벌'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이 문구를 제거해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또 아다모 웹사이트(www.adamobydell.com)를 개설해 입소문을 유도했습니다. 이 사이트에는 한 달 동안 80만명이 들렀다고 합니다.

아다모는 '사랑에 빠지다''사모하다'는 의미의 라틴어입니다. 델은 소비자들이 아다모에 푹 빠지길 원하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품 스펙트럼을 확대하고 싶겠죠.문제는 시기입니다. 시기가 너무 안 좋습니다. 아다모를 기획할 때만 해도 극심한 불황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과연 요즘 같은 불황에 아다모를 사모해 2000달러를 기꺼이 지불할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