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본주의(new caplitalism)의 실험은 실패했다. "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자본주의 미래'라는 시리즈를 시작하며 현재의 글로벌 경제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영어에서 가장 두려운 아홉 단어는 '나는 정부에서 나왔고 나는 도와주러 여기에 왔다(I'm from the government and I'm here to help)'라는 것"이라고 농담했을 정도로 '정부는 악,규제 완화는 선'이라는 논리 하에서 지난 30년간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온 신자본주의가 종말을 고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각국 정부는 수조달러의 자금을 쏟아부어 은행 국유화에 나서는가 하면 새로운 금융규제의 틀을 마련하느라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렇다면 금융위기 이후의 자본주의는 어떠한 모습일까. 금융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자본주의를 전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FT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소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가 토네이도에 휩쓸려 오즈땅에 떨어졌을 때 "더 이상 캔자스에 있는 것 같지 않아"라고 말했던 것에 비유하며 "앞으로는 과거 30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금의 금융위기를 시장만능주의가 부른 재앙"이라며 "앞으로는 지금보다 정부의 규제가 강화된 자본주의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살아남지만 시장 중심주의에서 시장원칙과 정부 규제가 맞물리는 형태의 자본주의가 될 것이란 진단이다.

FT는 규제완화와 시장중심주의를 특징으로 한 신자본주의는 이미 '자기몰락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금융산업의 급격한 성장 외에 △광적인 금융혁신 △글로벌 거시경제 불균형 △과도한 가계부채와 자산가격의 거품 등이 바로 지금의 금융위기를 잉태한 씨앗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 금융부문의 총부채는 1981년 국내총생산(GDP)의 22%에서 지난해 3분기 117%로 급증했다. 영국의 경우엔 이 비율이 250%에 달한다. 또 미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997년엔 66%였으나 10년 뒤 100%로 뛰었다. 파생상품이라는 새로운 금융시스템과 정부 프로그램 등이 가계부채를 키웠다.

FT는 지난 30년 동안의 친시장주의 경제는 1950~1970년대 케인지언 모델에 기초한 혼합경제의 실패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것이지만 이마저도 금융위기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 상황을 맞아서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FT는 △시장의 정통성은 약화되고 △미국의 신뢰성이 손상을 입었으며 △중국의 권위가 높아지고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1920~1930년대 대공황 이후의 변화를 상기시키며 정부의 금융시장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만약 정부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업무를 분리시키는 데까지 나아가고 '대마불사'를 우려해 은행들이 해외 진출보다 국내 영업에 집중하도록 할 경우 그 자체로 역세계화(디글로벌라이제이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FT는 또 과거 대공황 땐 자유무역주의가 무너지고 외국인 혐오증과 권위주의를 가져왔다며 극단적인 경우엔 글로벌 경제통합이 되돌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이런 상황은 이머징마켓(신흥국)에 더 혹독한 시련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의 황금시대는 자기모순에 빠져 붕괴됐다"면서도 "금융개혁은 불가피하지만 지나친 규제는 오히려 해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만일 경제위기를 예방할 수 있는 단순한 방법이 있었다면 이미 금융규제의 시금석이 됐을 것"이라며 "계획된 시장도 역시 모순이 있고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