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는 지난 주말 "당장 현금유동성이 부족한 것은 아니며 신차 개발자금 등 중 · 장기 투자비를 확보하기 위해 지원을 요청했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협력업체들도 "지금은 부품대금 결제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당장 오늘 내일의 결제자금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현금 얼마나 있나
비상장회사인 GM대우의 재무 상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회사 측이 함구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GM대우의 과거 재무제표를 통한 부품대금 결제 및 인건비 규모 추정치,최근 차 판매 통계,크레딧라인(신용공여한도) 인출을 통해 확보한 금액 등을 감안하면 적어도 2000억~3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갖고 있을 것이란 추산이 나오고 있다.
이 회사는 작년 초 6000억원의 현금을 갖고 있었고 작년 3분기까지는 차 판매를 통해 현금을 늘려왔지만,최근 몇 개월 전부터 영업 환경 악화로 현금 유입액보다 유출액이 커져 보유 유동성을 많이 소진한 것으로 추정된다.
GM대우의 현금 순유출은 작년 12월과 지난달에 가장 극심했고,이달부터는 크게 완화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회사는 일단 외상으로 부품을 매입해 차를 생산 · 판매한 뒤 2개월(중소 협력업체) 또는 3개월(대형 협력업체) 후 부품대금을 결제한다. 지난달까지는 감산에 착수하기 전인 작년 10~11월에 외상으로 들여온 부품 대금을 결제했다.
이에 따라 작년 12월과 지난달에는 매달 7000억~8000억원의 현금이 나간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차 판매 급감으로 같은 기간 매출은 월 6000억원에도 못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나간 돈보다 들어온 돈이 훨씬 적었던 것이다. 일종의 마이너스통장인 크레딧라인을 한도까지 뽑아내 55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한 것도 이 기간이다.
하지만 이달부터는 감산에 들어간 작년 12월 이후부터의 외상매입분에 대한 결제가 시작된다. 협력업체들에 따르면 작년 12월 이후 GM대우가 외상으로 들여온 부품 규모는 그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연히 부품대금 결제액도 줄어들게 된다.
이달까지는 11월 외상 매입에 대한 결제분이 일부 남아 있지만,다음 달부터는 결제 대상이 모두 감산 이후 분이라 금액도 과거 절반 수준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GM대우가 최근 감산을 지속하는 것은 현금흐름 관점에서 물품대금 결제 등에 따른 현금 유출액을 자동차 판매를 통한 현금 유입액 한도 내에서 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모회사 리스크'가 걸림돌
요컨대 GM대우가 당장 물품대금을 갚지 못할 정도로 유동성이 바닥나 부도나 법정관리 등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 가능성은 낮다는 게 주변 관측이다. A협력업체 사장은 "규모가 줄긴 했지만 납품대금 결제는 기한에 맞춰 잘 이뤄지고 있다"며 "종전 60일이던 결제 기간을 늘려달라는 요구도 아직은 없다"고 전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정확한 것은 GM대우가 제출할 자료를 봐야 알겠지만 자금을 요청한 것은 지금 당장 유동성이 고갈됐기 때문이 아니라 추가적인 상황 악화에 대비하자는 측면이 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GM대우는 향후 자동차 주문량과 글로벌 경기 상황 등을 감안해 공장 가동률을 조정,현금흐름을 통제하는 동시에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 절감에도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 회사 임원들은 작년 말 성과급을 전액 반납한 데 이어 오는 5월부터 연말까지 임금 10%를 반납하기로 했다. 사측은 노조와 특별교섭을 벌이며 경비 절감 방안을 강구 중이다. 내달 중이라도 산업은행의 자금 지원이 결정되면 자금 사정은 당분간 안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변수는 남아 있다. 자동차 판매 부진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 유동성 고갈은 불가피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매출 부진이 장기간 이어지면 인건비 등 고정비가 있기 때문에 감산으로 부품대금을 줄여도 현금이 메말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산 위기를 맞고 있는 모회사 GM의 처리 결과도 GM대우에는 리스크 요인이다. GM이 내달 말 미국 정부로부터 추가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고 한국의 법정관리에 해당하는 '파산보호'(챕터 11) 신청을 하게 될 경우 채권 · 채무가 동결돼 GM대우도 단기적으로 충격을 받을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