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도시 모습은 여러 단면을 통해 다양한 풍광으로 나타난다. 건축은 이 같은 도시 모습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교보빌딩 네거리에 이색적인 외관으로 탄생한 빌딩도 건물이 주변 풍경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서울에서도 선망의 도심에 속하는 강남권 핵심지역에 '어반하이브'(UrbanHive)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들어선 건물이 주인공이다.

이곳 건물들은 지역 유명세를 의식한 탓인지 한결같이 강한 과시욕을 드러낸다. 후발로 들어선 '어반하이브' 역시 그런 점에서 뒤지지 않는다.

어반하이브는 일단 기존 빌딩에서 보기 힘든 파격적 디자인으로 수많은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단순한 시선의 관심을 넘어 호기심과 궁금증을 발동시킨다. 하얀 벽면에 온통 동그란 구멍을 뚫어놓은 모양이다. 지나칠 정도로 단순 명료한 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건물이다.

사람들은 이 건물을 보면서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재료는 무엇이고 저 많은 원형 구멍들은 무슨 기능을 할까. 창문 역할을 제대로 할까. 건물 내부가 어둡지는 않을까하는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게 된다.

어반하이브가 들어선 '강남 교보생명 네거리'는 인근 '강남역 네거리'에 비해 활기가 좀 떨어졌던 곳이다. 그러나 어반하이브가 자리를 틀고 난 뒤로 분위기가 눈에 띄게 밝아졌다는 평가다.

이 건물의 독특한 외벽은 단순히 건물을 감싸는 장식용 표피가 아니다. 건물을 지탱하는 몸체의 일부다. 이게 기존 빌딩과 다른 독특한 점이다. 기존 고층건물의 경우 보통 외피는 건물의 내부 골조를 감싸는 단순한 포장이다. 이를 커튼월이라고 한다. 대부분 유리로 이뤄졌고 이를 통해 다양한 모양을 낸다.

그러나 어반하이브는 건물 구조벽체를 외부로 노출시켰다. 유리 외피를 내부로 끌어들임으로써 전통적인 오피스빌딩 구축기법을 뒤집었다. 역발상 기법이 재미있다. 단순히 뒤집기만 한 게 아니라 외벽에 다양한 디자인 요소를 넣었다. 몸체 자체가 조형미를 갖도록 한 것이다.

구조체와 외피의 이 같은 위치 반전을 통해 건축가는 판에 박힌 듯한 건물 생산 관행을 깨고 색다른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지를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고민도 많았다. 노출된 콘크리트가 과연 지상 17층짜리 대형 건물 외피로 적당할지,시공상 무리는 없을지,회색빛 재료가 혐오스런 모습은 아닐지 등 갈등이 꼬리를 물었다. 무려 열세 번의 모형 실험을 거쳤다.

그러나 골조를 그대로 드러낼 경우 자칫 건물 전체가 차갑고 무거워 보일 수 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외벽 전체를 하얀 색상으로 처리하고,벽체 전체에 원형의 구멍을 내는 아이디어를 냈다. 결과는 성공이었고,이를 통해 건물은 안팎이 소통하면서 숨을 쉬는 새로운 모양으로 탄생했다.

어반하이브(UrbanHive)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곤충세계의 구조물 중 가장 튼튼하다는 벌집(hive)구조를 차용했다. 가장 경제적이며 구조적으로 안전한 형태를 찾아낸 것이다. 원형의 개방공간은 자연스럽게 창의 역할을 하게 된다. 답답하지 않느냐는 궁금증이 생긴다. 해답은 건물에 들어가보면 바로 풀린다.

원형의 창은 외부를 바라보는 도구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답답한 느낌이 거의 없다. 망원경을 통해서 밖을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반하이브는 구조체를 외부로 빼낸 덕분에 내부 공간이 시원스럽다. 기둥을 없앨 수 있는 효과를 얻은 것이다. 이로써 실내에서는 막힘없는 '원형의 외부 풍경'이 쏟아진다.

건축물에서 조형미를 강조하다보면 가끔은 실용성이 희생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어반하이브는 외관의 뛰어난 조형성과 실용성의 충돌을 매끄럽게 풀어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중견 건축가인 김인철의 안목과 철학이 막힘없이 드러난 작품이다.

이런 호평에도 불구하고 뭔가 조금 허전한 느낌도 없진 않다. 좀 더 과감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절제의 용기와 미덕을 깊이있게 깨닫지 못한 젊은 평론가의 작은 욕심일까. 그래도 즐겁다. 이것이 필자 또한 계속 건축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남훈 명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