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자금이 서울 강남 요지의 오피스 빌딩(업무용 건물)을 속속 접수하고 있다.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들이 테헤란로변 빌딩을 매물로 내놓자 원화 대비 달러화 가치 상승으로 구매력이 높아진 외국계 투자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사들이고 있다. 28일 오피스빌딩 중개업계에 따르면 차입 여력이 빡빡한 국내 투자자들은 구조조정 한파가 본격화되면 빌딩 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뒷짐을 지고 있는 반면 외국계는 외환위기 직후 대형 빌딩 투자 수익률이 컸던 점을 되새기며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 중개업자는 "달러당 원화 환율이 작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25%가량 오르고 빌딩 가격은 20% 이상 떨어져 외국계 입장에선 대형 빌딩을 작년 가을보다 40% 정도 싸게 살 수 있다"며 투자가 몰리는 배경을 설명했다. 투자자 가운데는 미국 유럽 일본 싱가포르 중국은 물론 베트남의 화교 부호까지 끼어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서울 강남구청에 작년 하반기 이후 신고된 외국인의 매입 부동산은 2건.유럽계 펀드로 알려진 '대치아이비유통유동화 전문유한회사'라는 긴 이름의 투자자는 대치동의 연면적 2만730㎡(지하4층 · 지상9층)짜리 오피스 빌딩을 1000억원에 사들였다. AG아시아리얼펀드(국적 미확인)는 신사동에서 신축 중인 연면적 3644㎡(지하3층 · 지상5층)짜리 빌딩을 290억원에 매입했다.

이처럼 관청에 신고된 건수보다 실제 외국계 투자자들의 빌딩 매입 사례는 훨씬 많다고 부동산 업계는 밝혔다. 국내 기업들이 사옥을 외국계에 팔고도 외국 자본을 유치했다는 식으로 위장하는 경우(환매조건부 매매)가 많아 신고된 거래 건수가 실제보다 적다는 것이다. 또 매각 잔금을 다 받고도 잔금 완납 기한을 몇 년 뒤로 잡아 놓는 경우도 있다.

실제 중국의 모 기업이 강남구 선릉역 근처 대형 빌딩을 2000억원 안팎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자금이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서만 2000억원 이상 대형 빌딩을 작년 4분기 이후 5건 매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1000억원대 빌딩까지 합치면 10건을 훨씬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피스빌딩 중개업체인 샘스의 이한승 투자자문실 팀장은 "외국인이 30%까지 투자할 수 있는 리츠(부동산투자신탁)를 통한 투자도 활발하다"며 "최근 매매된 종로구 신문로 금호생명 사옥에도 일본계 자금이 30% 가까이 투자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장규호/이호기/박종서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