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환율 효과,시장 다변화 등을 통해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5% 넘게 증가한 32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22일 발표했다. 기아차는 5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 행진을 이어가며 2005년 이후 처음 연간 영업흑자를 달성했다. 글로벌 불황에 따른 수요 부진을 고려할 때 작년 실적에서 현대차는 '선방',기아차는 '약진'했다는 평가다.

현대 · 기아차는 그러나 이날 증권거래소에서 연 기업설명회에서 올해 전망은 아직 사업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할 정도로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증권시장에서는 현대차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데다 향후 전망이 안갯속이라는 점 때문에 주가가 전날보다 2.87% 떨어진 4만22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작년 실적,환율 효과 등으로 선방

현대차는 작년 4분기 44만8221대의 차량을 팔아 8조831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8조7380억원)에 비해 1.1%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5810억원,2440억원으로 각각 8.9%와 27.9% 줄었다.

이에 따라 작년 전체 매출은 32조1900억원으로 전년(30조6200억원) 대비 5.1%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1조8770억원으로 3.5% 줄었다. 이 같은 실적은 지난해 하반기 급격히 악화된 영업환경에 비춰볼 때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다. 미국과 유럽의 신차 판매가 각각 18%와 8% 줄어든 가운데서도 수출 비중이 높은 현대차 매출이 오히려 늘었고 영업이익도 1조8000억원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수요가 꾸준한 중 · 소형차 비중이 높은 데다 시장 다변화 전략 등에 힘입은 덕분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이어진 원화 약세 영향도 컸다. 원 · 달러 환율은 지난해 19.1% 상승(원화 약세)했고 원 · 유로 환율도 25.7% 올랐다.

하지만 작년 4분기 실적은 증권사 예상치를 밑돌았다. 증권사들이 추정한 4분기 실적은 매출 9조1500억원,영업이익 6440억원,순이익 5103억원 등으로 현대차가 이날 발표한 실제 경영 성과를 크게 웃돈다.

정태환 재경본부장(부사장)은 "매출 감소는 중 · 대형차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보다 판매 단가가 낮은 중 · 소형차 매출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판촉을 위한 마케팅 비용과 판매보증 충당금이 예상보다 늘면서 영업이익도 예상에 못 미쳤다"고 전했다.

올해 실적은 '글쎄'…시계 제로

올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작년보다 훨씬 어려울 것으로 진작 예고됐다. 선진국에서 신흥시장까지 번진 자동차 수요 침체가 회복 조짐이 전혀 없다. 일부에선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가 6000만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세계 자동차 생산 능력은 9000만대에 달한다. 결국 설비 가동률이 손익분기점인 80%보다 훨씬 낮은 67%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대대적인 감산에 나서고 있다. 실적 전망도 어둡다. 이미 전 세계 공장에서 감산에 나선 도요타는 3월 말 마감하는 2008 회계연도에 1500억엔(약 2조2500억원)의 영업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현대차 역시 올해 사업계획을 내놓지 못할 정도로 불확실성이 높다. 현대차는 올 1분기 국내외 생산량을 전년 동기 대비 25~30% 줄이기로 한 상태다. 현대차는 글로벌 경기 침체를 고려,브라질 공장 건설 계획도 유보하기로 했다. 정 부사장은 "경제 상황이 불확실성의 연속인 만큼 사업계획을 확정짓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시장 상황 변화를 살피면서 분기별로 생산과 판매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물론 현대차는 일본 경쟁 업체에 비해 시장 포트폴리오에서 유리한 편이다. 현대차는 내수시장과 북미,유럽,아시아,기타 등 5개 권역별 시장점유율이 20%씩 정도로 고르게 형성돼 있다.

반면 도요타 등 경쟁사들은 선진시장 비중이 55~75%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경직된 노사관계를 재정립하고 유연 생산에 나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